기숙사를 나와 연구실을 가다가, 옆 길가에서 죽순을 보았다. "어, 언제 이런 것이 났지?" 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두 뼘 정도였더니,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었다.
대나무를 보다 보면 재미있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나무를 보며 초조했다. '대나무는 저렇게 빨리 자라는데 같은 기간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굉장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죽순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가 나서 쑥쑥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저렇게 잘자라는 죽순이 하나가 아니라니 세상은 참 넓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대나무는 이름은 나무이지만 풀이다. 자라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갈색의 죽순이 죽 올라가다가 어느 높이가 되면 밑둥부터 푸르고 단단하게 변해간다. 하루에 딱 한 마디씩 푸른 색의 내가 아는 대나무가 되었다. 동시에 위는 계속 자라서 대나무는 아래는 파랗고 위는 갈색으로 계속 자라는 모양새가 된다. (태터툴즈의 불안정버전과 배포버전의 관계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몸이 자라는 것과 마음이 자라는 사이의 불균형을 보는 것 같아 그를 보며 생각을 많이 하였다.
마지막으로, 어느날 보니 길가의 잘 자라던 대나무 죽순들이 사라졌다. 사라지면서도 교훈을 하나 주고 갔다. "잘못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안된다." 대나무숲이 아닌 곳에 난 죽순들을 싹뚝 없애버린 조경사 분을 상상하며, 어떤 일이든 아무리 급해도 정석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숙사 바로 옆의 대나무길.
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