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생전 무소유를 말씀하셨던 고인의 뜻이 담긴 저서를 소유하기 위해 서점마다 붐빈다고 한다. 모든 의지가 세계의 틀 안에서 다시 해석되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일 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세상에 놓고 떠났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마치 촛불처럼 마지막에 가장 밝게 빛나고 꺼진다. 그리고 모두가 잊는다.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누군가 빛을 내며 사라지는 것을 보며 잠시의 교훈을 즐긴다. 이 명멸明滅하는 사람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고목에 마치 반딧불이처럼 등장하여 그 빛으로 그림자를 보이게 하고 사라진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직은 아장아장 걷고 있는 가능성 속의 존재들이지만 떠난 사람만큼 새로운 사람들이 왔을 것이다. 세상은 빈 자리를 스스로 채우기 때문에 누군가가 떠난 빈 자리는 그들로 곧 채워진다. 구조 속의 개인은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고, 구조 밖의 개인은 구조에 의해 해석되는 순간 그 안에서의 위치가 결정된다. 사회는 개인을 정의하는 끊임없는 순환 구조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확립하며, 그 대체 불가능성은 다른 모든 것을 대체 가능한 것으로 치환함으로서 완성된다.
모든 개인의 가치를 하위 가치로 만들어버린 이 엄청난 변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많은 시도들이 있다. 변화를 가능하게 한 원인 중 하나는 '기록의 만연' 이다. 전통 사회에서 지식과 경험은 사람을 통해서만 이어져 내려온다. 지금은 수많은 대체 기록 장치가 존재하고 기록 행위가 빈번하다. 경험은 지식의 양으로, 감은 회귀 예측으로 대체되었다. 살아온 시간에 가치를 주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사라졌다. 기록은 대체 가능한 개인을 만든다. 한 인간의 삶이 이전만큼의 가치가 없다면, 개인의 가치는 얼마나 떨어졌을까?
개인의 중요성에서 경험을 배제한다면 다른 부분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기록은 고정된 정보이다. 넘쳐나는 기록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움의 종말'을 의미한다. 가까운 시간 안에 가능해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정보는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런 사회에서의 개인의 중요성은 '기록을 엮어 길을 만드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일을 할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기계가 세상을 인식할 때 노동 계층은 사라질 것이고, 정보가 스스로를 인지할 때 지식 계층은 도태될 것이다. 거대한 기록의 바벨탑 위에서,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동작하는 세상의 입구에 들어섰다. 개인에게는 세포만큼의 가치만 주어졌다. 대체 불가능한 개인이 없는 시대에 다시 해묵은 질문에 대한 새로운 대답을 해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이 질문이 기록에 대한 절망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