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8일 LIFT Asia 09의 오픈 세션에서 발표한 주제를 같은해 10월 8일에 우리말로 정리했다. 너무 어려운 표현을 교정하여 공개해 본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Twitter-Art : 언어를 넘어선 접촉에 대하여

신정규 / 포스텍 물리학과 / 니들웍스 / TNF

미리 일러두기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트위터-예술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트위터에 대한 이야기도,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도,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를 넘나들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조금 힘들 수도 있습니다. 미리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1 : 외계인과의 접촉 (Contacting Aliens)

여기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단 하나의' 메세지를 외계로 보낼 수 있다면, 어떤 메세지를 보내시겠습니까?"

굉장히 뜬금없는 질문처럼 보입니다만, 실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영양가 없을 것 같은 질문을 지난 50년간 꾸준히 해 왔습니다. 파이오니어는 태양계 밖으로 날아갔을 때 혹시 만날 외계인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그림을 싣고 갔습니다. 보이저 우주선에도 정보를 담은 동판이 실려 있습니다.

pioneer 10호

파이오니어에 실린 그림입니다.

이러한 동판은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류가 무엇인지, 어느만큼의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도형과 선, 그리고 그들간의 비율을 이용하여 표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그림을 보는 상대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우리만큼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과학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메세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자'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외계인들은 몇몇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 처럼 영어로 이야기할 리가 없기 때문에 외계로 보내는 메세지에는 문자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관점도 (만약 있다면) 우리들과는 아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수학을 문자로, 물리학을 언어로 하여 그에 따른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우주에서 살고 있다면 같은 물리 법칙을 발견했을 것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할 말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작은 우주선이 안고 갈 수 있는 동판의 크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그 동판 안에 쓰고 싶을겁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는 요점을 흐릴 것이고, 너무 적은 이야기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판은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동원되어 '정보를 어떻게 압축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 끝에 쓰여졌습니다. 나중에 만들어진 동판들은 수소 원자의 특성에서 시작하는 선들의 비율로 만들어진 문자를 이용해 인간 종의 DNA에 대한 간략한 정보까지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정보 중심의 접촉' 이 중요할까요?

제 친구가 예전에 말해 주었습니다. "음악은 언어가 닿을 수 없는 끝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에 굉장히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낳습니다. 그 중 일부는 모두와 공유할 수 있지만 일부는 온연히 연주하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사람 사이에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그 대부분은 언어로 바꿀 수도, 수식화 할 수도 없습니다. 정보로 바꾸려면 어마어마한 양이겠지요.

우리는 정보를 얼마나 잘 실어 나르느냐에 집중하지만, 우습게도 서로간의 이해는 정보화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닌, 그를 매개로 한 감성에서 옵니다. 우리가 외계인을 만났을 때 진정으로 얻고 싶은 것은 정보의 압축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죠. 이 끝없이 넒은 우주 안에서.

2. 외계인 이해하기 (Understanding Aliens)

이제 잠시 외계인 이야기는 접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더 손에 잡힐 듯한 현실의 삶으로 돌아와 봅시다. 이번에 이야기할 것은 외계인에 대한 내용이 아니지만 놀랍게도 거의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외계인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아마 이름도, 직업도, 생각도, 감정도 모를겁니다. 공통점이라고는 제 이야기를 들으러 오셨다는 점 뿐이고, 그 이외엔 그냥 남인 사람들입니다. 여기엔 심지어 언어마저도 다른 분들이 있습니다. 굳이 빛의 속도를 타고 태양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은 외계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류가 파이오니어나 보이저를 이용해 외계에 메세지를 보냈듯 여러분도 가끔 여러분 주위의 외계인들에게 메세지를 보내곤 합니다. 요새 웹에서 유행하는 '트위터'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익숙하신 분들도 꽤 많으실겁니다. 트위터를 왜 쓸까요? 트위터는 버즈 채널입니다. 휘발성의 정보가 끊임없이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텍스트로 된 라디오 방송국을 하나씩 열고, 자들에게 내용을 방송합니다. 독자들의 태반은 외계인들입니다. 우주에 메세지를 쏘아 보내는 행위와 트위터에서 방송을 하는 행위는 같은 동기를 근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twitter

트위터에는 140자의 제한이 걸려 있고, 바이트로 환산하면 420 바이트 정도의 정보를 한 번에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공간 안에 많은 사람들은 메세지를 넣어 정보의 바다로 띄워 보냅니다. 참 작지 않냐고요? 사실 크게 작지도 않습니다.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나노 시대를 예견하며 남긴 말이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질을 바늘 끝에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작은 세계에는 아직 큰 공간이 있다" 보통의 관점에서 420바이트는 손톱만한 공간이지만, 생각보다 큰 공간입니다. 정보는 끊임없이 자신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140자의 제한에 맞추어 사람들은 자신의 메시지의 크기를 계속 바꾸어 갑니다. 주제와 벗어나는 부분과 수식어는 과감히 잘라냅니다. 내용은 간결해지지만, 요점은 더 명확해집니다.

심지어, 글이 아닌 조금 더 직접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것들을 얹어볼 수도 있을겁니다. 420바이트의 한계를 갖는 예술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3 : 외계인과 이야기하기 (Talking with Aliens)

좀 전에 트위터가 일종의 문자 라디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되었던 비틀즈를 기억하실겁니다. 아래의 문자도 트위터에 쓸 수 있겠습니다.

T180DF#AL2AL4O4AAP4F#F#P4O3DDF#AL2AL4O4AAP4GGP4O3C# C#EBL2BL4O4BBP4GGP4O3C#C#EBL2BL4O4BBP4F+F+P4O3DDF#A L2O4DL4O5DDP4O4AAP4O3DDF#AL2O4DL4O5DDP4O4BBP4EEGL 8BP8MLB1L4MNG#AMLL3O5F#1L4MNDO4F#MLL2F#MNL4EMLL2BMNL4ADP8D8D4

이 코드는 비틀즈의 노래 중 하나입니다. (베이직을 배우셨던 분이라면 해독하실 수 있을겁니다) 조금 더 보기 쉽게 정리해보죠. 이러면 여기 계신 분들 중 음악을 하시는 분들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T180 DF#A L2 A L4 O4 AA P4 F#F# P4 O3 D

DF#A L2 A L4 O4 AA P4 GG P4 O3 C#

C#EB L2 B L4 O4 BB P4 GG P4 O3 C#

C#EB L2 B L4 O4 BB P4 F+F+ P4 O3 D

DF#A L2 O4 D L4 O5 DD P4

O4 AA P4 O3 D

DF#A L2 O4 D L4 O5 DD P4

O4 BB P4 EEG L8 B P8 ML B1 L4 MN G#A ML L3 O5 F#1

L4 MN D O4 F# ML L2 F# MN L4 E ML L2 B MN L4 A

D P8 D8 D4

음악이 아닌 그림은 조금더 작게 압축할 수도 있을겁니다. 원을 그려봅시다. 칼 세이건의 소설 '컨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 정해졌을 '초월수'에서 그림을 찾아내는 것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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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32x32의 격자에 맞게 정리하면 아래처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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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의 용량을 계산해 봅시다. 32x32/8 = 128바이트입니다. 하나의 트윗의 7분의 2를 차지하는 용량입니다. 비트 그림은 마음껏 수정해도 용량 자체가 변하지 않으므로 다양한 무늬를 그려 넣을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은 압축하면 더 작아집니다만, 그 경우 상대방이 '어떻게' 압축을 풀어내는지 알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방법은 2의 6승을 한 변으로 하는 데이터 자체의 특성이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알려줍니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알 수 있습니다. 기하학적 도상을 보이는 그림의 경우에는 위와 같이 그 자체의 의미를 부여해서 해독할 수 있습니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비틀즈의 노래는 사실 '악보'를 이해해야 해석할 수 있고 음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모순이 발생합니다. 노래와 같은 정보는 해독하기 위해서 정보의 의미를 1대1 대응으로 알려주는 일종의 '로제타 돌'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의 '로제타 돌'을 생각해 보려면 우선 로제타 돌로 번역할 언어가 먼저 필요합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언어가 필요한 역설적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4 : 외계인과 유대하기 (Loving Aliens)

행성간 통신은 크기가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주 먼 거리에 떨어진 존재와의 데이터의 교환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중간에 오류가 생기면 그걸 알아채고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보정하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미래에 목성 주변에 거주지가 생긴다고 가정해 보면, 여기서 목성까지 문자 메세지를 보낼 경우 여러분들은 하루에 한 통에서 두 통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는 스스로의 오류를 보정하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 연구들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고, 언젠가는 쓰이게 될 겁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데이터를 정확히 전달한다고 해서 그 뜻이 정말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무수히 주변의 외계인들과 '문자 그대로' 대화를 나눕니다. 데이터 크기의 제약조차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은 일어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세상은 축구공 위에 얹어놓은 달걀처럼 언제 엎어질 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외계인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과 생각 방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보로 전해질 수 없는 영역이라면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정말 전해야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정보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전해집니다. 정보의 크기가 아무리 적다고 해도, 트위터는 사람 사이에 전해져야 하는 것을 전하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사랑받습니다. 파이오니어 안에 실린 동판은 그 내용 뿐 아니라, 그걸 그렇게 만들었던 이들의 이유 또한 함께 외계인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작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감성을 나눌수 있는 이유가, 정보를 감성으로 바꾸는 로제타 돌을 만들어서 420바이트의 공간에 얹어 놓았기 때문일까요? 420바이트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그 안에는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넣을 수도 있고, (아마 외계인도 이해할 수 있을) 마음을 담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드려 보겠습니다.

"만약 '단 하나의' 메세지를 외계로 보낼 수 있다면, 어떤 메세지를 보내시겠습니까?"

끝내며

세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지만, 시간은 30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서로가 서로의 비유가 되도록 단단하게 묶어서 말씀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여러분들이 어느 쪽의 관점을 통해 듣고 해석하셨든, 그게 제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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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15:57 2010/04/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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