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다. 곧 아침이 된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건드리다가, 그냥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새벽을 만나버렸다.
컵에 찬물을 한가득 담아 기숙사를 나왔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지금은 겨울입니다' 하였다. 목으로 넘어가는 물이 '시원한 것은 좋으나 곧 감기 걸립니다' 하였다. 어느새 환절기 감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독감을 걱정할 때가 되었다.
이맘때 즈음이면 창밖이 밝아와야 하는데 여전히 먹색일 뿐이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해는 제맘대로 뜨고 져서 지각을 마비시킨다. 해가 제맘대로 움직였던가? 하긴 해만큼 초단위로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도 없다.
서울 집에 있을 때 새벽 일찍 산에 올라가 팔각정에서 바라보던 아침해가 기억난다. 해를 보고 싶으나 참아야겠다. 졸리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할 여력도 없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자란다.
룸메이트는 GRE 시험을 치러 새벽부터 대구로 가는 차에 올랐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잠을 자든 자지 않든 생각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면서 누워야겠다. 어둠을 벗삼으며 지금까지 무작위라고 생각하던 계를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표현할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누가 벌써 논문으로 발표하지나 않았는지 검색해 보아야겠다.
세상엔 파고 들어가면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그러한 생각들의 미궁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잠들기 전에 찬 공기 속에서 심호흡을 하고 올까.
어제 룸 메이트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예전에 했던 대답을 다시 돌려 주었으나 그 대답은 아마도 보편성을 얻기는 힘든 듯 했다. 내가 아니라 룸메이트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답해주기를 요구하는 그에게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대답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GRE를 치러 가던 길을 돌아와 다시 물어본다면 역시 우물거리겠지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이지만 (또는 새벽이니까) 잠시 밖에 나가서 같이 심호흡을 해보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면 그 새벽 안에서 웬지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밤의 먹이 바래고 봉숭아빛이 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만 담을 수 있는 무엇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