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반대쪽 산맥으로 나가는 문을 지나서도 아이는 마지막장을 놓지 않고 계속 보았어. 저렇게 큰 산맥을 넘는데 그냥 넘으면 되지 왜 그런 이상한 행동들을 시킬까. 그런데 문을 넘어서 오는 주위 사람들을 보니 표정이 뚱해. 아이하구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거야. 저쪽 편에 아이가 들고 있는 지침서와 똑같은 책을 팔고 있는 사람이 보였어.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그 책을 팔고 있는데 그걸 본 이쪽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지. 아이는 엉겁결에 같이 휩쓸려갔어.
“아니 도대체 안내서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어서 파는 거요?!"
“당신들 왜 이런 책을 파는 것인지 설명해봐!"
사람들의 아우성속에서도 책을 파는 사람은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지. 그러더니 약간 소리가 가라앉은 틈 사이로 이야기를 시작했어.
“자자 잘 들어보세요. 저렇게 높은 산을 한 번에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려면 몸이 버텨낼 수 있을까요? 외따로 떨어진 길목에서 쥐라도 난다면 허리를 다쳐 다리를 못 쓰게 된다면? 자자 상상해보세요 이 책은 그럴 때를 대비해 차근차근히 준비운동을 해가면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진 책입니다."
뒤에 이어진 기다란 말은 사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어. (코끼리 돌기 하는 이유가 그 고도에서 산소가 적을 수 있어서래나. 그거밖엔 안 들리네.) 사람들은 웅성거리더니 그냥 돌아갔어. 아이만 남았지.
“아저씨 그럼 운동 안하고 명상 안하고 그냥 오면 며칠씩 안 걸리고 바로 올 수 있지 않아요?"
아저씨는 갑자기 어디서 들린 아이의 말을 듣더니 책을 싸서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어. 아이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다시 원래 가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지.

16
그렇게 큰 산맥을 넘어온 곳은 넘어오기 전의 곳과는 날씨가 완전히 달랐어. 커다란 산 때문일까? 어딘지 바다를 마주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제는 바다 향기보다는 산 냄새가 더 많이 나는 곳이구나. 하늘색이 너무나 예쁘다고 아이는 생각했어. 약간 이상한 것 같았지만 참 예쁘다- 하고 아이는 계속 걸어갔지. 사실 정말 이상한 하늘이야. 파란색이 아니라 온갖 물감을 덮어놓은 것 같거든. 그래도 아이가 여행경험이 없으니까 하늘이 원래 저런 색도 있나보다 하는 거지. 아직까지는 생각이 열려있거든.
여러 가지 색의 하늘에 여러 가지 색의 구름이 지나가려고 하는 가운데에서 아이는 넋을 잃었어. 구름들이 꼭 솜사탕같이 알록달록하게 하늘 위를 조용히 덮고 딸랑딸랑- 하면서 저쪽에서 날아오고 있었거든. 그걸 보면서 밤이 되면 하늘이 검은 색이 아니고 다른 색이 되지 않을까 하고 아이는 속으로 기대를 했지. 발끝에 걸리는 돌도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가지각색인 바람에 아이는 예쁜 돌을 줍다가 시간이 가는 줄 몰라버리고 말았어.

17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아이는 어느 정도 예쁘게 생긴 돌들을 다 주웠어. 얜 전에도 그랬고 매일 이렇게 뭘 줍다가 시간을 다 보내네. 하늘이 약간씩 깜깜해 지는가 싶더니 웬걸 또 노란색이 되고 그러니까 종잡을 수가 없고. 낮은 아닌 것 같은 게 저녁 먹을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아인 저녁 즈음 이겠구나 하고 쉽게 알 수 있었어.
하늘이 아주 새파란 색이 될 때에 어느 쪽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하늘에 불꽃이 터졌어. 파란색 배경에 여러 색의 빛이 나는 것이 너무나 황홀하게 보여서 아이는 짤랑짤랑 주머니 속 돌 소리를 내면서 그쪽 길을 따라 막 뛰어갔지. 뛰어가는 아이의 귀에 노랫소리도 들리고 웃음소리도 들리고 하는 것이 너무나 듣기 좋아서 아이는 배고픈 것도 잊고 뛰어서 갔대요.

18
아이의 발끝이 닿은 곳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마을 한가운데였어. 여러 가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마시고 하면서 있는 그런 곳이었지. 사람들도 모두 색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고 하나같이 예쁜 색의 모자와 장갑과 신발을 신고 있었어. 이런 곳은 처음 와보는 곳이라 아이는 정신이 없었지.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만 덩치가 아주 큰 아저씨에게 부딪쳐버렸지. 아이는 “아야” 했지. 그 아저씨는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아니 이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니!”
하면서 너무 놀라는 거야. 그러더니 아이의 손을 잡고 어느 집으로 허겁지겁 달려갔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안의 사람에게 아저씨는 말했지.
“어서 이 애에게 정말 유니크한 옷으로 하나를 입혀주시오.”
아이는 안에 있던 사람의 손에 끌려 이리저리 집 안을 둘러 다니게 됐어.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아이는 화사한 연초록색 윗도리에 샛노란 아랫도리의 옷을 입은 파란색 모자의 꼬마가 되어있었지.
아저씨는 아이를 보더니 다시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갔어. 엉겁결에 따라가던 아이는 그만 그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지.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나 흥겹게 놀아서 아이는 같이 웃고 노래하면서 밤의 광장에 남게 되었대요.

19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됐지. 해가 뜰 때가 되니 사람들은 다들 지쳐서 집으로 하나둘씩 들어갔어. 피곤한 아이도 주변을 둘러봤어. 밝은 곳에서 보니 공기도 색이 있는 것이 보였지. 아이는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옷을 도로 돌려주러 자신이 옷을 빌려 입었던 (그렇게 생각되는) 집을 찾아서 들어갔어.
집안은 비어있네. 안 그래도 피곤한 아이인데 빈 집에 들어가니 잠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어.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어서 그냥 앞에 보이는 책장 너머의 침대에 가 잠시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지. 그래서 침대에 앉았지.
정신차려보니 또 저녁이 된 것 같아. 아이는 어 자버렸네 하고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지. 누가 덮어주었는지 모르지만 있던 모습 그대로 잘 정리해 놓고 옷을 돌려주러 나왔어. 그런데도 아무도 없는 거야. 식탁위에 맛있게 생긴 빵이 있길래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그냥 빵을 하나 주워 먹었지. 그러다보니 밖에서 또 폭죽소리가 나고 환호하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고 밖을 보았어. 그새 쉬었는지 또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색의 밤 안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지.

20
아이는 또 별 생각 없이 축제 가운데에 끼었어. 열심히 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와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너- 어제하고 옷이 똑같구나?"
아이는 이 사람이 날 어떻게 기억할까 하면서 네 하고 대답했지. 그 사람이 놀란 얼굴로 말했어.
“아니 이틀째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는 거니? 저길 봐. 어제 네가 입었던 옷하고 모자와 바지가 똑같은 사람이 있지. 어떻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또 여기 나올 수가 있는 거지? 정말 이상하구나!"
그 사람은 또 어떤 집으로 끌고 갔지. 집을 돌고 나온 아이의 모자와 바지는 또 회색과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또 사라졌고 아이는 조심조심 광장으로 나왔지.
아이는 주위를 조금씩 둘러보기 시작했어. 어제는 아무 생각이 없이 즐겁게 놀았는데 오늘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 자세히 보니 모두가 옷이 모자를 쓴 사람은 모자 색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머리 모양이 모두 다른 거야. 아이는 참 신기하게 생각했어. 모두가 다른 것이 모두가 똑 같은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거든.
돌의 무게 때문에 축 늘어진 바지를 부여잡고 아이는 또다시 축제의 가운데에서 즐거운 밤을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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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9 03:49 2003/11/29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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