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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마주 보던 아가씨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계속 거울을 보고 있던 아가씨는 이상한 것을 느꼈지. 거울에 비치는 것이 자신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이 거울에 비친 상인지 헷갈렸어.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다 아가씨는 신기한 것을 봤지. 자기가 있던 자리가 원래 자기가 있던 자리가 아닌 거야. 앞의 거울에 비치는 곳이 자신이 원래 있던 곳이었지.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면서 아가씨는 자기 머리를 한 대 쳤지. ‘정신이 나갔을까?’ 하고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거울을 등지고 반대쪽으로 걸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뒤돌아보았어. 거울속의 아가씨도 자신과 똑같이 반대쪽으로 걷다가 자신을 보았지. 그냥 거울이네? 생각하고는 아가씨는 하하 웃었지. 그리고 거울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어.
그런데 분명히 자신이 걸어온 길이 아닌 거야. 길의 생김새도 달랐지. 전의 길이 지하에 있던 커다란 통로였다면, 지금 걷는 길은 산 속 어딘가에 있는 좁은 골짜기 같았거든. 그렇게 걷다가 아가씨는 상상도 못했던 것을 보게 되지. 땅 속이라고 알고 있는 길인데 위가 점점 밝아지더니 해가 뜨는 거야. 실제로 골짜기가 맞았던 거지. 아가씨는 당황했어. 거울을 볼 때 자신이 그대로 비치는 것만 보았지 배경이 달랐던 것은 생각하지 못한 거야. 약간 다르지는 했지만 밤이어서 잘 알아볼 수 없었던 거지. 정신없이 걸으면서 아가씨는 자신이 거울 안에 비치는 가짜 자신일까, 아니면 반대쪽이 자신이 비치는 모습일까 생각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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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것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 그리고 구분해 내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야. 거울이 하는 일은 그냥 ‘거울에 비치는 빛 을 반사하는 것’뿐이니까,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거울 안에 있어도 거울 안에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잖아? 어쨌든 아가씨는 뜨는 해를 보면서 한참을 고민하며 골짜기를 따라 걸어갔어. 조금씩 골짜기가 넓어지더니 어느새 골짜기의 양 절벽 사이가 아득해 보일만큼 멀어졌지. 눈앞에 펼쳐진 길에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나무들이 조금씩 보였어. 아가씨는 무슨 나무일까 궁금해 하면서 계속 걸어 나갔지. 계속 걸어갈수록 나무들의 키는 조금씩 짧아져서 몽당연필만 해졌대요.
골짜기를 지나 언덕길을 올랐지. 길이 가파르지는 않아 힘들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고생도 많이 했으니 저 정도의 길도 힘든가봐. 그렇게 언덕을 오른 아가씨의 눈에 아주 오래전에 보았지만 그만큼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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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 보면,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 물이 많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지. 그 다음에는 사실 아무 생각도 안나. 바다의 매력에 빠져서 그저 바다와 함께 노느라 생각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바다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 마음속에 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눈에 보이도록 비추어 주면서 보는 사람 하나하나의 추억에 스며들어가지.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스며들어가도 물이 워낙 많으니까 바다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야.
아가씨가 바다를 보지 않았는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나하나 꼽아보면 십여 년 가까이 된 것 같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바다를 앞에 두고서 아가씨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지. 어떤 생각 같은 것이 있으면 더 이상할까? 그거야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언덕 위에 서 있던 아가씨는 조금씩 걸어서 바닷가로 내려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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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 아가씨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지. 멀리 아래쪽에 큰 배가 하나 대어 있는 거야. 언덕이 높아서 그 위에 서서는 먼 곳의 넓은 바다만 볼 수 있었는데, 언덕을 내려오는 길이라 바다가 아닌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던 거지. 바닷가가 항구는 아니라 배가 바짝 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 가까운 곳에 대어 있었어. 동해처럼 수심이 갑자기 깊어 지나봐.
조각배나 뗏목만 타고 배라고 하는 걸 제대로 타 본 기억이 없으니 아가씨의 눈에는 커다란 배가 신기하게 보였지. 며칠씩 먼지 속에서 굴렀던 것은 생각지 않고 아가씨는 저어기 멀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언덕을 약간은 속도를 내어 걸어 내려갔어.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 바닷가 모래를 밟으면서 아가씨는 혹시 배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펴놓고 놀고 있지는 않을까 해서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어.
하지만 바닷가에는 가끔 겁 없이 나와 옆으로 종종걸음 치는 게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아가씨는 큰 배에서 타고 나온듯한 보트를 보았지. 배에 바로 탈 수가 없으니까 옛날 배처럼 보트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거야. 배 안이 너무나 편해 보여서 (게다가 먹을 것이 눈에 보였어. 아마 그게 아가씨를 용감하게 만든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로 보트에 올라탔어. 물론 혹시 사람이 있을까봐 옷은 탁탁 털었지.
“혹시 사람 있어요?”
대답을 기다릴 틈도 없이 아가씨는 의자에 앉아 잠이 들어버렸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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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졸았나 싶었는데 눈을 뜨니 보트 안이었어. 아가씨는 놀래서 일어났지. 그냥 들어와서 잠까지 자버리고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주위의 사람들을 찾아보았어. 하지만 아무도 없네.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왔는데 자기 전까지 쨍쨍했던 햇볕이 별로 밝지 않은 거야. 아가씨는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놀라버렸지. 분명 바닷가에 있는 보트를 탔는데 보트는 커다란 수영장 같은 수조 안에 있었거든. 천정에 매달린 불빛이 밝지 않아서 어둡다고 생각한거야.
아가씨는 보트를 한바퀴 돌면서 죽 주위를 둘러보았어. 보트의 주위는 사방이 막혀있었지. 보트 뒷부분에서 수조를 보니 물이 흘러나가는 듯해서 ‘저기로 들어왔나 보다’ 하고 생각했어. 일단 보트에 있기는 이상하니까 아가씨는 고물로 갔지. 쇠로 만든 길쭉한 흰색 지지대를 잡고 어떻게 수조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무거워서 들리지가 않는 거야.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니까 수영은 잘하거든. 아가씨는 귀찮아져서 그냥 수조에 뛰어들어서 난간까지 헤엄쳤어.
난간에 올라서 옷을 대강 짜 말린 아가씨는 한숨이 나왔지. ‘사람들이 너무 곤히 자고 있으니까 내버려두고 배로 데려왔나 보다.’ 생각해버리고는 인사라도 할 겸 사람들을 찾기로 했어. 배가 들어가는 수조가 있을 정도의 방이니까 아주 크지. 한 쪽 구석에서 문을 찾고는 아가씨는 손잡이를 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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