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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슬슬 떠날 준비를 했지. 포탄은 떨어졌던 곳에는 다시 안 떨어진대. 그런데 병원은 포탄이 떨어졌던 자리가 아니거든. 죽기는 싫으니까 싹싹 도망가야지 아가씨는 죽는 걸 엄청나게 무서워해. 얼어 죽을 뻔 해봐서 그런 걸까? 알 수 없지.
뭐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가씨는 여기 있으면서 온갖 것들을 보아버렸어. 팔이 하나 떨어진 사람도 보고, 다리가 없어진 사람도 보고 그랬지. 가끔은 속이 탁 터져서 나온 사람도 보아버렸어. 사람이 얼마나 약한지 아가씨는 실컷 보았지. 약간만 이상해도 금방 죽어버리는 그렇게 의미가 없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해 버렸어.
그런데도 아가씨는 자신을 보면 그런 생각을 계속 할 수 없었지. ‘자신은 얼어서 벌써 날라서 산위로 가버렸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참 강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기도 했거든. 하지만 아가씨는 떠날 때가 된 걸 알았지. 아직 부상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그 사람 -아이-가 맘에 걸리긴 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서 아가씨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어. (어떻게 되긴, 포탄 맞을지도=_=) 전쟁터 중간에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아가씨는 태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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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챙긴 아가씨는 서둘러서 그 곳을 떠났어. 차는 속도를 냈지. 그 바퀴가 아주 큰 차를 타고서 가버리는 거야. 덜컹거리면서도 차는 잘 달렸지. 아가씨는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어. 바퀴에 물컹한 게 밟히는 듯 할 때마다 눈을 꼭 감으면서 말이야. 바퀴에 밟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거든.
차는 숲 속을 계속 달렸어. 멈출 수 없었지. 조금만 더 가면 전쟁에서 안전한 곳이 오거든. 대륙의 끝에선 중력이 이상하게 되어서 역시 포탄들이 그 곳으로는 발사되지 않으니까. 전쟁에 들어가는 것들은 모두 돈이니까 그리로 발사하진 않아. 그것도 아주 비싼 돈들…….
아가씨는 이를 악 악 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어. 귓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소녀는 눈을 부릅뜨고 발판을 밟았대요. 눈을 쳐다보기 무섭지. 꿈에 나올 거 같아. 아가씨의 눈 속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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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갔을까. 더 이상 포탄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해진 후에야 아가씨는 정신을 차렸어. 얼마나 긴장했는지 핸들에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 발을 떼자 차는 천천히 굴러가다가 멈췄어. 아가씨는 창문을 열었지. 무면허로 운전해놓고 참 여유로워 보이네. 아,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는구나.
아가씨는 차 문을 활짝 열고 내렸지. 주위는 숲인데 나무들이 너무나 컸어. 큰 나무는 백미터 정도 할까? 쉽게 볼 수 있는 메타 세콰이어 그것도 원래 아주 오랫동안 크면 백 미터가 넘게 자라는 나무인데 지금 이 숲은 나무들이 전부 그만큼씩 커. 땅이 잡아당기는 힘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그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에 잘 오지 않아서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말야. 아가씨는 내려서 그 나무들을 한참동안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차에 도로 올랐지. 긴 줄을 줄줄줄 끌고 나오는데, 어- 잘 보니까 사람들이 줄줄줄 엮어져 있어. 저렇게 막 끌고 내리면 다 다치지 않을까? 하긴 그래도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어디긴 하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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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낑낑거려서 겨우 사람들을 다 꺼냈지. 결국 버리고 가진 못했던 거야. 큰 나무에 하나하나 기대어 놓으니 나무 한 그루에 모두 기대 놓을 수가 있었지. 나무가 정말 크거든. 웬만한 남자 기숙사 하나 둘레정도는 될 테니까. 그리고 그 차에 아무리 많은 사람을 실어 보아야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그래서 다 둘러놓을 수 있었지. 아가씨는 힘들어하며 차에 도로 올라탔어.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았지. 차는 다시 그 큰 나무들 사이를 툴툴거리면서 지나가기 시작했어.
숲은 깊어졌지. 나무들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갔어. 가끔 무슨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잠자리가 차에 앉기도 했어. 아가씨는 “들러붙지 마!” 하고 말하니 잠자리가 소리에 놀랐는지 포르르 날아가고 했어. 세상에 그 무게에 차가 출렁거린다.
점점 더 숲은 깊어졌어. 아가씨는 이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나봐. 무작정 차를 몰고 가는걸 보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