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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말을 계속 했어.

“도시로 향하는 그 긴 길을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곳을 지나갔습니다. 이상한 곳이 많았죠.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곳들 말입니다. 한번은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말을 하는 도시에 간 적이 있었죠. 정말 신기했지만 정말 불편했죠.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언어를 배워야 하니 말입니다. 모두가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다른 사람 각각의 언어를 배워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 곳 사람들은 아주 신중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고르고 그 후에야 그 사람의 언어를 배웠지요.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끼리는 아주 소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그런 끈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자신의 말을 해서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말로만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서는 자신이 먼저 화를 냅니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해도 절대 이해하지 못하지요.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 곳에서 꽤 오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그 곳에서 세 가지 언어밖에 배우지 못했지요. 물론 세 언어에 능통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은 했었다고 말하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아가씨는 저쪽 환자의 붕대를 감아주면서 살짝 웃었어. 그 사람은 그걸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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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환자들을 다 보고 나가버렸어. 그 사람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었지. 어느 샌가 윗몸을 일으키고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 사람은 다시 침대에 얌전히 누웠지. 깜박 잠이 들 뻔 했는데 옆에서 누가 그 사람을 깨운 거야.

잠드는 중이라 놀랐지만 안 놀란 척 하고 돌아보니 그 아가씨가 서 있었지. 손에는 노트를 들고 있었어. 아가씨는 노트를 그 사람에게 주었지. 그리고 그 사람 옆에 앉았어. 혼자 히히덕거리던 아가씨는 그 사람이 멍하게 있자 말을 시작했지.

“음, 저는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많이많이 만났지요. 정말 많이 만났지요. 여러 부분을 여러 방법으로 아픈 사람들을 모두 만나보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이 곳에 오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마 이 곳에 얼마 있지도 않을 거예요. 저도 재미있는 곳을 많이 지나왔거든요. 이 전쟁터 숲 중간에 끼어들어 오기 전에는 다른 한 나라의 도시에 가 있었어요. 가서 뭐했냐면요, 성냥 팔았어요. 왜 성냥이냐면요, 제가 성냥 팔면 잘 팔리거든요. 아마 라이터 팔면 많이 못 팔았을 거예요.”

그러더니 아가씨는 혼자서 키득키득 웃어댔어. 그 사람은 어리벙벙했지. 그 표정을 보더니 아가씨는 참을 수가 없는지 대놓고 하하하 웃다가 실례라는 걸 알고는 있는지 웃음을 뚝 그쳤지.

“그러니까 성냥이 좀 안 팔리잖아요? 그러면 큰 유리창이 있는 가게에 가서 멍하게 유리창을 보고 있다가 성냥을 하나 꺼내는 거예요. 그리고 불붙이고 불에 비친 절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막 성냥을 사줘요. 웃기죠? 그런데 정말 그렇거든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 도시에선 어린 시절에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대요. 성냥 팔던 소녀가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 내용은 없는 것 같지만 전 그것 때문에 참 편했거든요. 그러다가 지겨우면 다른 걸 하면 되는 곳이었어요. 힛 그냥 영화 속에서나 이야기 속에서나 본 것처럼 행동하면 꼭 그대로 되더라니까요. 사람들이 참 그런 것들을 많이 보고 살았는지, 그냥 전 거기선 아무거나 하고 싶은 역을 하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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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말을 시작하니 아가씨는 멈출 줄을 몰랐어. 그 사람은 딱 놀라서 아가씨의 입만 보고 있었지.

“왜 싫증 났나면요,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는 것도 다 좋은데 그 너무 이상하다는 느낌 드는 거예요. 어떻게 된 것이 항상 그렇게 느낌이 다를까? 그 곳에서는 우연도 무지무지하게 잘 일어나요. 정말 영화처럼요. 뭐 나름대로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우연이 그렇게 잘 일어난다는 것 어떻게 보면 정말 당사자에게는 이상하고 약간은 신경질이 나기도 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피엔딩이 아니어야 할 일도 항상 해피엔딩이 되고 그런 식이었어요.
누군가가 운명을 조종하고 있다는 기분 너무 나빴죠 어쩌면 정말 그 도시가 큰 무대였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나왔어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뭐 지금은 이렇게 전쟁터 한 가운데에 와서 이렇게 부상자들을 보고 있죠. 아 그 도시 가기 전에는 꽤 먼 길을 걸었어요. 버스를 타도 몇 십 시간은 걸릴 거리였었는데 무엇을 타고 다니고 싶지가 않았죠.”

그 사람은 웃었지. “얼마나 걸었습니까?”
“한 6개월 정도 걸었나-?”
그 사람은 멍 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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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이 6개월을 걸었단 말입니까?”
아가씨는 히히 웃으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지.
“네, 걸었어요. 제가 말이 많아진 것도 다 그 때문이에요. 매일 처음 보는 사람들의 집에 가서 하루를 지내야 하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주 말이 많이 늘어버렸어요. 그 전까지는 말을 별로 잘하지 못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곧잘 잘 이어서 말하기도 하고 그래요. 보세요. 저 말 잘하죠?”

그 사람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어. 뭘 정말 말을 잘하네. 그렇게 보이지?

“산 넘어 올 때는 힘들어서 정말 고생했다니까요. 케이블카를 탔으면 빨리 넘어 갔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글쎄 케이블카 탑승료가 왜 그렇게 비싼지 결국 원숭이들 사슴들하고 같이 산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니까요. 그 산맥 넘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그 후에는 비교적 평탄해서 괜찮았어요. 그렇게 걷기 전에는 꽤 넓은 초원이었어요. 그 곳에서는 움직이는 마을을 따라 다녔지요.”
말하다 말고 아가씨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고 있지. 그 사람은 아가씨가 어느 길을 걸어 이 곳까지 왔을까 머릿속에서 대충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어. 그리고는 놀라서 아가씨를 똑바로 보고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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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길을 걸어왔단 말이에요? 그럼 대륙을 그냥 돌아온 거잖아요?”

아가씨는 “히히 네 맞아요.” 하고서는 혼자서 막 “어 재미없죠?” 이렇게 중얼중얼 거리더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버렸어. 그 사람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냥 웃어버렸어. 그러고 있으려니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아가씨가 되돌아왔지. 되돌아 와서는 ‘깜빡했어요’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서 그 사람에게 주었지.
그리고 나가면서 “오랜만이에요” 하고 작게 말했지.

그 사람은 “그러네요.” 하고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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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3 17:52 2004/10/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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