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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이 무엇을 찾아가는지 모르지만 소녀는 약간의 짐작을 할 수 있었어. 밤마다 불 옆에서 둘은 많은 것을 의논했거든. 이 곳에서 이쪽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아니 이쪽이 더 맞을 수도 있다- 하면서 서로 계산을 하고 지도에 많은 것을 그렸어. 소녀도 그 지도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 지도를 읽는 법을 몰라서는 아니야. 처음 큰 대륙에 도착했을 때 학교에서 배웠거든. 하지만 지도를 알아볼 수 없었던 이유는 지도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커다랗게 꾸불꾸불한 윤곽만 보일 뿐이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옅은 빨간 색으로 선이 하나 그려져 있고 여러 갈래로 검정색 선이 많이 그어져 있을 뿐 이었어. 빨간 색이 자신이 걸어온 길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
이 숲에 무엇이 있기에 그렇게 어딘가로 가는지 물어 본 적이 있지. 소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달랐어. 이 숲은 아도레스 지역의 초입일 뿐이라고 아이는 자신 있게 말했지. ‘그게 무슨 곳인데?’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나도 몰라’ 하고 말았지.
“소녀가 더 잘 알지 않아?”
“어, 내가 어떻게 그걸 아니?”
아이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소녀를 쳐다보았지.
“소녀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아저씨는 웃었어.
“같은 곳을 탐험하지만 아이와 소녀는 다른 곳에 있는 것과 같은 거야. 내가 탐험하는 것은 이 일을 택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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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걸었지. (꼭 걷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가끔은 동물을 타고도 갔어. 소녀가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하지 않고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이 걸렸지만.) 계속 어디론가 가고 있었어. 숲 속을 흐르는 큰 강이 있는데 그 강을 따라서 계속 올라갔지. 처음에는 먹을 것도 많고 물도 구하기 쉬워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물을 구하기 쉬워서 강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동물들은 강을 중심으로 살거든. 무서운 동물들도 말야. 아저씨와 아이는 수원(水原)을 찾는 중이라고 했어. 강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그 끝을 찾는 중이라고 했지. 어떻게 생겼을까? 소녀는 가끔 멍하게 상상해 보았대요. 예쁠까? 작은 샘이 퐁퐁 솟아나는 곳일까? 아니면 끝을 모르는 어둡고 큰 동굴에서 물이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걸까? 소녀는 보고 싶어졌지. 그 생각과 시간이 일 년 가까이 되는 동안 소녀를 작은 탐험가로 만드는 중이지.
그리고 모두의 길은 어느 순간 막혔어. 높이를 알 수 없는 폭포가 눈앞에 펼쳐졌거든. 모두는 폭포를 보고 놀랐지. 넓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폭포였으니까. 아저씨는 이 폭포가 아마 다른 면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폭포일 거라고 생각했어.
“세상이 정팔면체니까 두 면 사이의 각은 꽤 크겠지만 물이 오랫동안 깎아 내려서 이렇게 그냥 폭포 비슷한 느낌을 주도록 되었을 거야.”
그렇게 말했지.
그나저나 폭포 때문에 모두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어.
아이가 말했지.
“우리 아주 긴 끈과 배를 만들어서 타고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위에서 끈을 잡아줄 수가 없는걸.”
소녀의 물음에 아이는 옆을 봐요- 했지. 소녀는 깜딱 놀랐어. 저녁 무렵인데 폭포의 한 부분의 물이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지는 해를 뒤에 두고 거슬러 올라가는 물은 정말 이상한 모습이었어. 땅이 깎여서 폭포의 저 안쪽 부분은 저쪽 면이 이 쪽 보다 안정해요. 그러니까 저쪽에선 여기가 위가 되는 거지. 모양을 생각해봐. 모서리 윗부분에서는 어느 쪽으로 더 기울기가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테니까. 그렇지?
그래서 세 사람은 배를 만들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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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만드는 데에는 달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걸렸어. 소녀는 줄을 꼬고 아이는 이것저것을 집어오고 아저씨는 그것들을 엮어서 배 비슷하게 만들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배가 아닌 것 같이 변해갔어. 술통 비슷하게 위아래가 없는 배이어야 하니까. 위아래가 언제 어떻게 바뀌어서 언제 뒤집힐지 어떻게 알 수가 없잖아. 달이 커지고 작아지고 그리고 보이지 않아 졌을 때 배를 가장한 어떤 것 은 만들어졌지.
“저 폭포의 속도가 아주 느리니까 지금부터 타야겠구나.”
아저씨의 말에 모두는 그 배 비슷한 것을 탔어. 칼로 줄을 끊으니 배는 절로 두둥실 흘러갔지. 그런데 물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가 없는 거야. 키를 만들기는 했지만 중력이 엉키는 곳에서의 물의 흐름은 정말 이상하니까 배는 이리저리 이상하게 이동했어. 이러다가는 간이로 만들어 낸 배가 오래 버티기는 힘들 거 같았지. 우리야 그냥 보고 있으니까 어 위험해 보이네- 하고 말지만 당사자들은 기분이 어떨까?
소녀는 안 그래도 큰 모자를 푹 눌러썼지. 죽고 싶지는 않아하지 하지만 예전에 어디에서인가 빛이 아무것도 없을 때에 느꼈던 그 감정과는 달랐어.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까 왜인지 모르지만 약간의 안도감이 드는 거야. 무슨 기분일까? 혼자 죽지 않아서 억울하지는 않아- 그런 생각과는 다르지만 보고 있는 걸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거잖아.
그러다가 아저씨가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 아이와 소녀는 당황했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아저씨는 밖에서 배를 잡고 발을 저어 방향을 바꾸어 보겠다고 했지.
“너희는 다리가 짧아서 아무것도 인도할 수 없어.”
아저씨는 말했지.
“언젠가 너희의 다리가 길어지면 누군가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저씨는 밖으로 나갔지. 배는 약간씩 방향을 잡기 시작했어.

44
배는 원래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지. 소녀와 아이는 숨을 죽이고 있지. 아저씨는 괜찮을까 아닐까 하면서 맘 졸이고 있는데 밖에서는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어. 한참을 물소리가 들리더니 점점점 소리가 커졌지. 폭포 가까이에 온 거야. 어느 순간 기우뚱하더니 배는 물을 타고서 올라가기 시작했어. 한순간 멀미가 났지만 배는 계속 올라갔지. 아니 이제는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무섭지만 신기해서 소녀는 깜빡 잊고 있었어.
아이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소녀에게 속삭였지.
“아저씨는 어떻게 된 걸까?”
소녀는 그때서야 생각이 났어. 폭포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도 아저씨는 통 안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당황해버려서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아이가 막았지.
“지금 문 쪽이 물 속인지 물 밖인지 어떻게 알 수 있어?”
하고서 말이야. 소녀는 어찌할 줄을 모르지. 아저씨는 배를 놓쳐버린 것 같았어.
그렇게 아주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잖아- 그렇지만 갇힌 곳에 있으면 시간감각이 흐트러지게 되니까 아주 오래된 것 같이 느끼고 있는 거야. 아이가 갑자기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어. 소녀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만 보고 있었지.
아이가 “나 이제 나갈게.” 하고 이야기했어.
소녀는 아이를 보기만 했지.
“소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잖아. 나는 아직 내 길을 스스로 밟을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되지 못했어. 그래서 아저씨하고 함께 있어야 돼.”
그러더니 조금 전에는 열지 말라던 문을 열었어. 당연히 문 밖은 하늘이었지. 중력의 위치가 바뀌면서 위아래도 함께 바뀌었을 테니까 중간에 반 바퀴 돌기는 했지만. 그리고 아이는 나가려고 했어.
“나 놓고 그냥 혼자 가버리는 거야?”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
“그럼 나 놓고 가 버리는 거야 아니면 나도 같이 가면 되잖아.”
아이는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어.
“아니면 아이도 그냥 나하고 위로 가면 되잖아. 왜 나가는 거야, 정말 혼자 길을 걸어 나갈 수 없어서 그런 거야?”
아이는 또 대답을 안했어. 그리고 아이는 나갔지.
‘소녀야 나중에 꼭 볼 수 있을 거야.’ 하고서는 배가 망가졌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작은 나무받침대를 들고서 말이야.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어. 소녀는 배 안에 주저앉았지. 눈에선 눈물이 방울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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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천천히 올라갔지. 얼마나 오래 올라갔는지 잘 헤아려보기 힘들 만큼 오래 올라갔어. 어느 순간 내려간다는 느낌이 멈추고 그냥 이리저리 흐르는 것 같았지. 소녀는 그냥 계속 가만히 있었어. 그냥 계속 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있었지.
가만히 그러고 있자니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프고 하지. 그 정도가 어느 단계를 넘어서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주섬주섬 이것저것 챙겨보았지. 먹을 것을 찾아서 대강 먹고 널브러진 짐들을 하나하나 정리했어. 정말 가지고 가야 하는 것들만 이리저리 챙기고 일어서니 무거웠지. 다시 무거운 것들을 덜어냈어.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채로 그냥 그렇게 정리를 하는 거야.
어느 정도 챙겼을까? 소녀는 정신을 놓고 있다가 손을 뻗어 문을 열었어.
햇살이 통모양의 배 안으로 비쳤지. 아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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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8 03:55 2004/01/18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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