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친일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해방 이후 친일파에 대한 이렇다 할 규명 및 그에 따른 조치가 없었던 중에서, 아직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몸으로 겪은 세대가 살아있는 중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으나 더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당초 많은 시민단체들과 역사학자들이 주장했던 법안은 국회 법사위를 거치면서 2대째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특정 의원을 중심으로 원안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다.
헌법의 정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다. ‘민주’는 국가의 권력이 국민 전체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뜻하고,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하여 배타적인 자존을 주장할 권리를 가짐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를 통하여 본 현재의 대한민국은 두 가지 정의 모두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해방 후 과도기와 전쟁, 그리고 5.16 쿠데타를 거치며 권력을 잡은 친일파는 굴절된 민족성을 주입하는 교육을 통하여 민주를 주장해야 할 시민들의 가치관을 조작하였고, 자신들의 영속을 위하여 국가의 자존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과감히 포기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 역사를 교육 하면서 역사의 주인공들로 수많은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문화와 민족의 상징으로 포장하여 교과서에 실어오고 있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통하여 일본에 당연히 요구해야 할 국가 차원에서의 사과 또한 헐값에 포기하였다. 조직적으로 진행되어 온 이러한 역사 왜곡과 주권 포기는 시민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제의 공식적인 ‘식민지’로 분류되었던 유일한 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일제 침략을 받은 같은 동아시아의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친일파들을 쉽게 용서해 주었고 일본의 침략을 긍정하였다.
일본은 가해자였으나 대한민국과의 사과 문제는 1965년에 마무리 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등 지금까지 줄기차게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한 몇 차례의 개방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본 문화에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굴절된 교육내용과 일본의 자아긍정적인 문화가 맞물려 가해자는 피해를 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용서를 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더 나아가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피해자였다는 인식조차 없어지고 일본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생길 정도로 일본은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을 통하여 제 2의 문화통치를 실현하고 있다.
이번 축제에서 있었던 축제준비위원회의 일본 전통복 공식 복장 선택 문제는 대한민국 대학생의 시대소명의식이 역사 교육의 왜곡과 문화 주입에 의하여 사라져가고 있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의 제기와 함께 복장 변경 재고 요청에 대한 단체의 공식 답변의 내용은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문제로 상황의 심각성을 격하하는 논지로, 친일 진상규명 특별법을 반대해온 국회의원들의 논지와 같은 전개를 보인다. 일정 기간 동안 외부인에게 학교를 대표하였던 자치단체 조직이 공식복장으로 일본 전통 복장을 선택한 결정의 문제점을 인식 하지 못했다는 점은 친일파를 위시한 일본의 문화통치가 성공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여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