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4/05/11 03:38 | inureyes
세계가 시끄럽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포로들에게 했다는 고문(국내 언론에서는 좋은 말로 '가혹행위' 라고 하지만 그냥 여러 외국 신문을 인터넷으로 보면 '고문'이다.)덕분에 부시도 난리고 럼스펠드도 난리고 미국의 속령인 영국 블레어도 난리다. - 다행히 미국의 식민지인 우리는 식민지라 그 주장의 당위성을 주장당할 능력도 없기에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다 - 신문에는 보통때면 당연히 잘렸을 잔혹무도한 사진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새삼스레 미국이 포로들을 고문하고 학대한 것에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문기사에서 검색해보면 미국이 이라크의 포로들을 학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단지 그 표현 방법이 말이냐 사진이냐에 따라, 혹은 보도한 언론사가 얼마나 큰 곳이냐, 미국 언론사냐 중동 언론사냐 같은 부분의 차이로 이제야 원래 당연히 있었어야 할 반응들이 나오는 중인 것이다. 부시는 자기가 등떠밀어서 보낸 부대들한테 화를 내는 중이시고, 프랑스는 이럴줄 알았다고 콧날을 대패로 다듬고 있다. 우리나라야, 뭐 넘어가자. (속만 쓰리다.)

고문은 전사戰史를 보면 언제나 있어왔다. 고문학대 없는 전쟁은 없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적어도 인간으로서 도덕적인' 전쟁에 관련된 법인 제네바 협정이 만들어졌고, 구속력도 없고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보통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표면적으로나마 보인다. 이 문제는 '미국이 정의의 부대냐 아니냐' 같은 어이없는 이야기 안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일어났던 침략전쟁에서, 승자가 도덕적인 결함을 가지게 되는 하나의 예이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드러났다"는 점이 어떤 식으로 민주주의와 도덕관념에 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강한 상황.

예전에는 이기면 더이상 생각할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승리 아래 묻힌다. 그러나 인류는 피부 아래의 본성이 어떻든간에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도덕적인 면에서 발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17세기에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초거대 시민사회가 표면화되어 존재하는 지금, 이러한 상황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떠한 지배구조가 작동하고, 어떠한 정보의 흐름과 조작과 선동과 통제가 작동하고 있는지에 관계 없이 이번 상황의 진행과 결과는 그러한 모든 것의 복합체인 '인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에 대한 척도가 될 것이고, 나의 인류에 대한 관점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p.s. : 동아일보를 쓰레기 신문에 임명한다. 어제 머리카락 자르고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다가 신문 보았는데, 부시 홍보 기관지가 차라리 낫겠더라. 위에 포로 사진 실어놓고 아래 그걸 옹호하는 식의 글을 써놓다니. 정신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판단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소년 동아일보의 독자로서 이러한 사태에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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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1 03:38 2004/05/11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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