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2/10/19 02:27 | inureyes

중간고사가 끝났다. 아무래도 학생이니까, 생활의 패턴이 학사 일정에 맞추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험 몇 개 치지 않았는데도 시험이 끝나니 바로 편안함이 몰려온다.

노트북안의,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그 오랜 시간들의 자료가 싹 날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시험공부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마음이 한순간 텅 비어버린 것 같았지만, 그 느낌은 하루를 가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탁탁 털어내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많은 물건들을 팔려고 내놓았다. 노트북답지 않게 컸던 노트북이 조금씩 줄어든다. 외부스피커도 팔고, 우퍼는 한 구석에 고이 싸서 모셔놓았다. 내일이면 무선키보드도 박스에 잘 담아 새 주인에게 줄 예정이다. 버리고싶다 더이상 매이기 싫다는 마음이, 이렇게 우연한 이유로 이루어 지기도 하는구나 하니 재미있다.

프린터는 다음 주 집에 올라갈 때에 함께 들고 올라가 어머니께 드릴 예정이고, 책상 오른편을 차지하고 있는 모니터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하긴. 어차피 2개월 후면 없어질 것이긴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 그리고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 마디.
꽤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또 많은 선생님과 선생들을 만났다. 행복했었다. 모두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완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모든 것들이 이제부터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서있다.

수많은 길 중에서 왜 여기서 '탐구'를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설명하려 해도 할 길이 없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힘들어 진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레고블럭을 아이에게 가져다 주면 한참을 만들어 본 후에야 자신이 생각한 대로 꼭 마음에 드는 무엇을 만들어낸다.

스무살이 될 때 까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보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죄악이다. 흐르는 시간 가운데에서 목격하게 되는, 자신의 레고블럭을 제대로 쌓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저, 설명서를 보고 따라 만드는 수많은 몸짓들. 똑같은 해적선, 똑같은 우주전함, 똑같은 인형의 집.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young' 플레이모빌을 가지고 노는 걸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요새는 원래 가지고 있는 많은 의문보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농담처럼 내가 생각하는 삶을 말하면 모두들 농담으로 듣는다. 아마도 그건, 농담으로 듣는 사람들 자신이 아직까지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만 만들어진 레고 블럭을 마음껏 가지고 놀아보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배움,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경외감'.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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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02:27 2002/10/19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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