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남과 불행한 만남

만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났던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와 나의 만남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걸까.
..

말은 모든 틈을 메워주지는 않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어
깊은 잠의 바다에 떠다니던 나에게 몇번이나
몇번이나 포기하지 않고 불러주었던 목소리를
가르쳐줘 너의 일을
너가 태어난 세계의 일을
그리고 마음 깊이 스며들어 왔던 물음

당신을 좀 더 알고 싶어요 라고.
...

『알고 싶어 이해하고 싶어 그런 소망이 있는 한
설령 빙하같이 느린 걸음일 지라도 인류는 진보해간다고...』

- '아르젠토 소마' 中.

아르젠토 소마. 수많은 애니를 쏟아내는 중에 가끔 범작이 아닌 작품이 낑겨있는 썬라이즈의 2001년도 작품. 게다가 만든 사람들이, 예전에 아동 애니 시장에 나름대로의 엽기성으로 유명세를 떨친 '무한의 리바이어스'의 스튜디오였다. 그러니 발표전부터 엄청난 주목. 나부터도 꽤 기대했었다.

뚜껑이 열렸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그림은 잘 그렸다. 그런데 뭘 말하고 싶었을까?

스토리 라인은 정말 괜찮다. 기대를 져 버리지 않은 반전. 무언가 많이 생각하게 해주는 결말. 게다가, 결말로 끌고 나가는 과정에서 작품을 정리해 나가는 방법이 정말 좋았다. 그렇지만 좀 어거지가 심했다. 게다가 작품에서 막 뿜어져 나오는 오오라는 웬 에반게리온의 느낌? 왜 에이리언들이 향해가는 길이 'pligrim point'이고, 타는 메카닉은 '관' 으로 했을까. (물론 에이리언들의 시체를 재활용해서 메카닉을 만드는 바람에 그렇다는 배경설정은 끝 가까이 즈음에 가서 알게되지만, 그러고 보면 이것또한 얼마나 에반게리온같은 설정인지.)

게다가 제목은 '아르젠토 소마' 인데 주인공은 프랭크인지 해리엇인지? 작품 중간을 계기로해서 리우 소마씨는 완전히 작품에서 밀려 버린다. 초반에 마키를 사고로 잃은 후에 모든걸 포기해 버렸다는 리우 소마. 마키와 그 한패거리인 싸이코 박사가 온 힘을 다해서 복구하려고 하던 에일리언 직소 퍼즐 출신 프랭크를 그 원인으로 찍고서 열심히 죽여보려고 하지만, 매일 실패. (게다가 우리 소마씨는 프랭크씨와 대 에일리언 합동 공격도 잘해요.) 거기에다 마키를 꼭 빼닮은 지체아 해리엇씨는 프랭크를 너무 좋아해서 목숨을 걸고 살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자신의 나이보다 정신연령이 6년이나 낮은 여주인공을 생각해 낸 것일까... 이것저것,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그리고 작품에 계속 등장하는 우리의 사과 아저씨. 전지전능 사과아저씨.

지적하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래도 25화 전부 다 보고난 후에는 마지막 한 줄의 대사에 공감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 셰익스피어 아저씨의 말. 그래. 스토리 전개가 말이 안되는 곳 투성이이고, 설정도 구멍투성이이지만 뼈대만 보면 괜찮으니까.

여주인공인 해티. 어릴 때 에일리언 전쟁때 머릴 다친데다 정신적 충격으로 잠을 6년이나 잤댄다. 놀랍다. 정말 잘자네.

주인공이 누굴까. 타쿠토씨(소마)일까 해리엇일까 아니면 프랭크(유리)일까. 결국 이야기는 저 세사람의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 마키씨도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네 사람. 스토리 자체는 나름대로 흥미진진하지만, 결국 뼈대는 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에이리언들의 조각을 이어붙여 되살려 내려는 작업을 하는 마키와 교수님(초싸이코같이 보이지만, 이과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같이 안보인다는.), 하도 바빠서 애인인 타쿠토는 잘 만나주지도 않는데, 막상 그 연구가 성공해서 프랭크가 되살아나는 순간에, 마키는 타쿠토의 눈 앞에서 건물에 깔려죽는다. -그러니까 지하에서 그렇게 거대한 것들 만들고 그러면 안되지. 쯧 연구비 지원에 인색한 이공계의 현실인걸까 하고 혼자 비꼬아 생각했음.-

작품 내내, 소마는 프랭크를 필사적으로 죽이려고 한다. 애인이 프랭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마나 프랭크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대 에일리언 방어 조직 속에 속해 있다는데에 있다. 파트너가 되어 같이 에일리언에 맞서야 하는 운명. 게다가 마키와 꼭 닮은 아이인 해티는 프랭크를 끔찍히도 좋아한다.

그런데 과연 소마는 정말로 프랭크 때문에 마키가 죽었다고 그렇게 믿고 있을까. 마음 속에서는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절대 떠올리지 않는 소마씨. 사실 절대로 깨어나지 않던 프랭크가 깨어난 이유는 마키 때문이다. (그건 소마도 끝에 가서야 알지만)

아마 최대의 반전은 프랭크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 전과 그 후가 과연 같은 작품인가에 대한 의문까지 던지며 소마를 주인공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엄청난 사건. 에일리언인줄로 알았던 프랭크가 사실은 사람이었다- 정도가 아니라, 에일리언들이 모두다 사실은 예전에 우주에서 실종된 우주비행사 유리씨의 일부였다. 는 엄청난 상황 전환으로 인해 작품이 흔들. 결국 순례포인트는 유리의 아내가 기다리는 캔자스의 한적한 집이었다나. 그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나름대로의 귀소본능? 친구를 도울려는 사과아저씨의 작품 전체에 걸친 음모도 끝에 가서는 슬플 뿐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 긴 시간을 기다려 온 사과아저씨.

엄청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만, 나름대로 엉성함 속에서 괜찮은 뼈대를 가지고 선 작품이었다. 설정만 조금더 확실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 정도 작품을 명작이라고 말하지 않기도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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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4 13:29 2002/10/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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