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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어내기/살아가기 | 2003/03/27 19:43 | inureyes
화요일에 서울에 다녀왔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파병동의안 통과를 반대하기 위한 시위가 있었다. 학교차원에서 몇 명이 참석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그 사이에 끼어갔다.

그 하루는 몇십년 되지 않는 삶 안에서 가장 어이없는 날로 기억되어 버렸다. 모든게 눈에 걸리적거렸다. 반전을 위해 모인 집회들이 반전깃발보다 단체깃발을 더 많이 걸고 있었다. (도대체 이라크전 파병과 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모습들을 모두 접어놓고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건 방패를 든 전경들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둘러싸서 시위모임에 가두어 버린다. 급하게 서류 가져다줘야 하는 그 아저씨는 결국 어쨌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시위라 참석할 마음이 없어서 서 있어도 둘러싸서 방패로 치고 밀어서 안으로 넣어버렸다. 그리고선 길을 막고 둘러싼 버스 안에서 가운뎃 손가락은 왜 내미는거냐. 치이고 해서 머리 한 쪽이 아픈데.

그 와중에서도 듣는것과 아는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극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헀다. 혼잡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신경전들. 심리전들.

간격두고 겨우 어떻게 나와서 경찰서에 잡혀간 친구들 꺼내왔다. 국회 방청권 얻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비공개를 한다고 해서 항의했더니 잡아갔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신문에는 '국회진입시도' 라고 나온다는 말이지. 국회 안에서 본회의 시작하기를 세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이었단 말이야. 진입은 무슨.

자기 키 세 배만한 깃대 들고 있는 강소연씨 만났다. 그 와중에서도 동창이라고 연락처 주고받고 했다. 그 전 주말엔 의경으로 군대간 푸우가 전화와서 '시위가지 마 진압나가기 힘들어ㅠ_ㅠ' 라고 했었다. 알 수 없다. 다녀온 날 새벽에 인상이와 포도주를 퍼 마셨다. 그때 나누던 이야기가 지워지질 않는다. 남한과 북한은 똑같은 체제에 뒤를 봐주던 나라만 다르다는 말.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인상이는 내가 멀쩡하게 돌아온 것만 해도 세상 변한 것이라고 했다. 하핫. 누가 정권이라도 갈아치우자고 했나. 자꾸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을 죽이지 말자는 거지.

국가차원의 비굴함 앞에서, 삶의 길이가 가져다 주는 통찰이 항상 이상에 가깝지는 않다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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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27 19:43 2003/03/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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