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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배가 너무 고픈 거야. 깜빡 잊고 빵 주머니를 배에다가 놓고 왔대요. 애들은 원래 배고픈 것을 못 참잖아. 그래서 힘이 쭉 빠진 표정으로 걷고 있는데 길들이 만나는 곳 근처에 빵집이 하나 있었어. 다 똑같이 생겼는데 빵집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제일 낮은 층에 있는 창 사이로 빵들이 많이 보였거든. 그 전에도 몇 군데를 지나쳐 왔는지도 몰라. 하지만 배가 고프니까 이제야 아는 거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정말 빵 가게 주인이다 생각하면 딱 맞게 생긴 주인이 있는 거야. 음, 그러니까 지금 이걸 읽으면서 상상이 드는 대로 그려보면 딱 그대로가 맞아. 정말 그렇게 생겼거든. 주인아저씨에게 아이가 “빵 주세요.” 그랬지 주인아저씨는 한번 아이를 딱 보더니 “돈은 있니?” 하고 물었어.
아이가 돈이 뭔지 알리가 없지 그래도 요새 아이니까 대강은 개념이 있어서 “돈은 없는데요.”
하고서는, 돈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좀 전에 바닷가에서 주운 조가비를 꺼냈어. 빵집 주인아저씨는 한참을 보더니 “그래, 거스름돈이야” 하고서는 돈을 주는 거야. 아이가 이상해서 “어, 아저씨 저는 돈이 아니라 조개를 드렸는데요.” 그랬지. 주인아저씨는 아이를 한참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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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직 모르니? 아이는 조개껍데기나 구슬 같은 것들이 돈이 되는 줄 알고 있어야해.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고 돈인 것같이 받아 주어야하지. 그게 아이에게 부담된 역할이고 내가 해야 되는 역할이잖니. 이상하구나, 이런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가르칠 텐데."
그러면서 똑같이 생긴 빵을 다섯 개를 주는 거야. 맛 나는 크림빵도 아니고 웬 딱딱한 하드롤을 줬어. 아이는 참 이상했지. ‘아저씨 하드롤밖에 없나요?’ 하고 물어보려니 그냥 주시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나오는데, 뒤에서 아저씨가 그러시는 거야. “가족은 다섯명일 테니 하나씩 나누어먹어라-".
‘어, 난 가족이 다섯 명이 아닌데요.’ 아이가 말하려고 하기도 전에 아저씨는 사탕도 한 주먹을 쥐어주면서 ‘왜 안 나가고 있지?’ 하고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구나. 아이는 주눅이 들어 밖으로 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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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도로를 달리는데 아이가 보니 모두가 똑같이 생긴 차들이야. 저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모두다 똑같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지. 너무나 이상해도 물어볼 수가 없지. 뭔가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거든. 저 쪽에서 자신과 또래의 아이들이 오고 있었어. 아이는 너무 반가워했지. 그런데 오는 아이들도 옷이 모두 똑같이 생겼어. 아이가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그 또래의 아이들이 아이를 둘러싸버렸어.
“넌 왜 옷이 다르니?” “넌 왜 이 시간에 그 곳에 서있니?” “넌 왜 머리스타일이 다르니?” “넌 왜 신발이 우리하고 다르니?” “넌 왜?"......
아이는 정신이 없었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가 아이는 그만 수많은 아이들의 틈에 끼어서 이렇게 저렇게 휩쓸려서 사라지고 말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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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고 해서 날이 바뀌고 해서 한해정도가 지났대요. 저쪽 골목에서 아이들이 한가득 줄줄 줄서서 쉭 지나가고 있네. 각자 집으로 들어가는데 한 아이네 집에 가면 가족이 다섯이래.
아이는 그날 정해진 공부를 하구 나와서 빵집에 가서 버찌씨를 주고 빵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지. 저녁을 빵으로 먹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와서 아홉시 정각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어. 착한 어린이는 아홉시에 꼭 자야 하거든.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야.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만져져서 꺼내보았는데, 그게 조개껍데기였대. 한 해나 지났는데 어떻게 아직도 조개껍데기가 주머니에 있는지는 몰라. 그렇지만 갑자기 생각이 난거야. 내가 여기 왜 있을까 하고 말이지.
한 해 가까이 아이는 그 곳에서 살아버렸대. 왜인지도 모르지만 그 마을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서 아이는 아이가 살아야 하는 모습대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졌지. 온화한 엄마와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가족도 갑자기 생기고 매일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도 익숙해졌지. ‘음 길은 꼭 왼쪽으로 걷는다.’ ‘얘는 불량학생이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얘는 모범생이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이렇게 감화를 받아서 결국 모두 착한 학생이 되어야 한다. 라는 식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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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는 조심조심 밤중에 몰래 나왔어. 착한 어린이 는 밤늦게 걸어 다니지 않거든. 그러니까 잡히면 나쁜 어린이니까 또 있어야 할 곳으로 가게 되거든. 한밤중에 막 뛰는데 아이니까 별로 빠르지가 않은 거야.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며 걷다가 예전에 보았던 그 큰 길로 나왔지. 길을 따라 몰래몰래 걷고 있는데 저만치서 차가 한대 막 오더니 아이앞에 멈추는 거야.
차문이 열리고 약간 나이가 많게 보이는 사람이 거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아이보고 타라고 했지.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탔어.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뒤는 어떻게 되었든 친절한 사람의 호의는 거절하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차문이 닫히고 차는 앞으로 죽죽 나아갔지.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지? 친절한 목소리로 아저씨가 아이에게 묻는 거지.
“길을 잃었구나. 집이 어디니?” 하고 말이야. 아이는 무서워졌지. 기껏 열심히 왔는데도 이제는 꼼짝없이 잡혔으니까. 아이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어. 여행 중이었고, 지금도 여행을 가는 중이고,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있다가 그만 오랫동안 이 곳에 있어버렸다고 말이야. 아저씨는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더니 조개껍데기를 보여 달라고 했어. 아이는 주머니에서 아주오래전에 주운 조개껍데기를 꺼내서 보여주었지. 아저씨는 조개껍데기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