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주위 사람들의 눈은 현실을 보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찾고 싶은 거겠지. 내용이 아닌 뜻으로만 만들어질 이야기 해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뜻은 각자의 속에서만 의미 있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이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우리 모두 아주아주 행복하게 되어 있으면 좋겠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2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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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말하는 사람만을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앞의 경우를 이야기라고 말하고, 뒤의 경우는 넋두리라고 말합니다. 조금 나은 표현이라면 '삶의 반추' 가 될 것입니다.
백통짜리 편지는 자장가가 되었고, 이야기가 되었고, 스스로 밟아왔던 지난 20여년의 초상 그 자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은 생의 무게 앞에서 좌절하지만 좌절앞에서 끝을 말한다면 잠재적인 좌절은 현실계로 올라옵니다. 사람은 슬픔 앞에서 허무하지만 허무 앞에서 무의미를 논한다면 허무하던 허무는 유의미하게 됩니다.
이 편지가 쓰여진 기간이 2001년 9월에서 2002년 4월이니, 마무리부터 따져도 벌써 햇수로 2년이 넘었습니다. 단어간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인생에서의 고난은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 조악하지만 따뜻했던 이야기는 나를 반추하는 거울이 되어 자신을 투영하는 시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아직도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년이 지나서야 읽을수 있는 상태로라도 다듬어 이렇게 외부 기억 한 켠으로 끼워 넣습니다.
퇴고를 마무리하며. 200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