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아버지 생신이라 서울 집에 왔다.

어떻게 쓰면 이렇게 되는지 모르도록 고장난 (부모님은 컴퓨터를 가지고 뭘 하시는걸까?) 집의 두 컴퓨터를 고치고 나니 새벽이다. 언제나처럼, 의자에 앉고 검은 바깥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는다.

*

아하하하. 큰 모니터는 좋구나. 볼록한 모니터는 이상하구나.
자판을 치고 있으려니 동그란 17인치 모니터가 넓으면서도 어색하다. 예전에는 익숙하게도 쓰던 모니터였는데, 노트북으로 바꾼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낯설게 보이나.

한때는 볼록한 브라운관 모니터만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볼록한 화면을 바라볼 때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평면 모니터를 쓴 후의 볼록한 모니터의 상은 굴절되어 보였다. 어느새 17인치의 대화면 모니터는 배불뚝이 모니터라고 불리며 찬 대접을 받고 있다. 10년 후의 LCD 모니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굴절된 시야뿐인 세상에서는 자신의 시야가 따라서 굴절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평면인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평면이 아니거든. 지금의 모니터들도 단지 모사일 뿐이다.
지금의 모든 시각들도 굴절된 것 보다는 나아보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진실은 아닌 어떤 시각일 뿐이다. 지금의 내 가치관들도 예전보다는 덜 굴절되었을 지 모르지만 여전히 완성을 향해가는 (혹은 전혀 아닌) 모사일 뿐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배불뚝이 모니터를 부여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평면 모니터보고 '더 화상이 왜곡되어 보인다!' 고 주장하는건 어폐가 있지 않은가? 인정할 것들은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매일 TV에 언론에 나오니 참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집에만 오면 반겨주는 이 LG T17XL 배불뚝이 모니터가 좋다. 하하하. 위에 붙은 상표명마냥 정말 HiSync되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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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0 04:34 2004/10/30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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