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늦은 지하철을 타고 강변역에 왔다. 가까이 있어서 쉽게 볼 수 있던 때는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신도림으로, 용인으로, 노량진으로 흩어져 헤어지는 뒷모습은 볼 수 없었다. 등을 지고 걸어야 하는 것은 그네들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변역에서 집은 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꽤 먼 거리이다. 생각하면 멀기 때문에 머리를 비우고 걷는다. 이어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벽 밤거리는 눈에 보이는 한산함보다 더 조용하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갈 때에는 책을 읽기 때문에 내 안의 조용함에 빠져 있는다면, 새벽에는 바깥의 조용함에 소음일뿐인 자신이 가라앉는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요안에 묻혀버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 발짝 해보아야 일 미터도 되지 않는 내 발걸음으로 어느새 이 킬로미터를 넘어 눈이 집을 바라본다. 낮에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면 빨리 도착한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어떻게든 '도착한다'. 조용히 다리에 몸을 실어도 분명히 눈에는 집이 들어온다.
전혀 조급하지 않게 살아가지만 가끔은 날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 발을 떼려고 한발 한발 억지로 노력하면 집까지 도착하는 길이 얼마나 멀까.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자신의 전환점을 찾으려 한다. 지금까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방향성을 주고싶어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리는 걷도록 놓아두고 자신을 고요함에 묻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걷다 보면 수많은 것들이 보인다. 가로수를 보는 사람은 집에 가는 길 가운데에도 참새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길은 그저 아스팔트이다.
새벽공기에 향이 있다는 것을 새벽 거리 속에 잠겨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바람의 속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버스를 쳐다볼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보는 모든 속도는 자신 안의 속도가 밖으로 배어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