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은 즐겁습니다. 분명 그런 기억이 아직 남아있을 리가 없지만 창밖을 보고있노라면 매일 가던 길을 새록새록 밟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어렸을 때의 기찻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엔 버스를 탈수가 없었습니다. 귀 밑에 멀미약을 찰싹 붙여도 뱃속에 들어간 음식들은 세상구경을 하고싶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기어이 바깥 햇볕에 대고 인사하고 나서 절 떠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항상 기차와 함께 했었던 시절.
대학생이 되고 한달에 두세번씩 우리 나라를 버스로 가로지르고 나서야 버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는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눈감으면 서울에서 포항까지의 길주변을 주욱 이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창문과 기다란 복도를 가진 기찻간은 이만큼 추억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키가 훌쩍 커버리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기차여행이 항상 편한 것은 아닙니다. 좌석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입석도 있습니다. 지금 대전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입니다. 벽에 기대어는 있지만, PDA를 스치는 손이 철컹철컹 소리에 맞추어 돌연변이 글씨들을 만들어냅니다. 두시간이면 도착 할텐데도 멀게 느껴집니다. 작년 겨울엔 어떻게 태백선을 일곱시간씩 서서 왔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여행할 때의 좋은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매일 다투면서도 사람들이 알쿵달쿵 모여사는 이유인지도 모르죠.
기차는 도착 이십분을 남기고 신나게 저녁 눈보라 사이를 헤쳐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