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력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4/12/24 03:09 | inureyes
논문 통과 기념으로 시장에 고기를 먹으러 갔다. 고깃집에 갔더니 혁이가 친구와 고기를 먹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친구 군대 휴가 나왔네. 1년 아직 안된 일병이구나" 하니 혁이가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묻는다.

수학과 01학번이라는데 아직 졸업 관련 이야기 안하는 것과, 머리 깎은 것이 각이 잡혀 깎인것, 그리고 그 길이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학기를 마치고 갔으니 6개월 또는 1년정도 되었을텐데, 백일휴가 후 석달만에 휴가 나와서 학교까지 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 상병이면 저런 머리 길이는 안나오니 저렇게 유추. 하지만 사람들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을 꽤나 신기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택시를 탄다. 택시기사 아저씨에 관한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앞자리에 앉으면 앞의 기사등록증을 보면 이 아저씨가 택시 운전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대충 97,8년 앞뒤이면 IMF로 인하여 그 전후의 직장이 다른 것이다. 개인택시기사라면 택시 운전을 꽤 오래 한 사람이다. 사진과 지금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를 비교해서 그 기간동안이 행복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다.

종교에 관련된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가운뎃 거울에 묵주가 매달려 있으면 그 종류에 따라 가톨릭이거나 불교 신자이다. 어떠한 껌통이 배치되어 있는가에 따라서도 종교를 알 수 있다. 정치 성향은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대개 틀어놓는 라디오의 채널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루종일 라디오를 듣기 때문에 정치성향이 라디오 채널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향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역의 영향도 쉽게 받는다. 그밖에도 택시안에는 그냥 둘러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택시 아저씨와 이야기를 곧잘하고 내리는 것을 은진이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긴 시간을 설명해야했다.

세상에는 인과율이 존재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에서 얼마든지 수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음도 당연하다. 어릴 적에는 그러한 과정을 한단계씩 밟아나가야 했다. 당시에 읽은 어떤 책에 묘목을 심어놓고 계속 넘다가 결국 나무를 뛰어넘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때부터 ㅤㄸㅒㅤ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과 노력을 했더니, 고등학교 어느메 이후에는 마치 인수분해하듯이 자연스러웠다. 별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것들이 알게되더라. 그 이후에는 오히려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유추해 냈는가'를 생각해내야 했다.

지환형은 그걸 눈치라고 부르고, 은진이는 그걸 '안다'라고 표현한다. 미애는 그걸 추리라고 불렀다. 십여년 이상 노력해서 얻어진 일종의 특기인데 뭐라고 부르든 별 상관은 없다.

대개 편할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불편할 때가 꽤 있다. 하나는 그러한 관찰이 사람을 향할때이고, 하나는 사람들이 그것이 '유추'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이다. 사람을 향할 때는 곤란할 때가 많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약간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 속에서 상대방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생각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 페르소나가 너무 싫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걸 상대에게 설명해주었을 ㅤㄸㅒㅤ 보일 호오가 골치아프다. 최고의 대책은 아예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사는 것이다. 게다가 그 눈이 자신을 향할 때는 자아성찰 정도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최고의 비수가 된다.

어쩌다 입을 열었을 때 내가 '아는' 것은 '유추'임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엔 그 맹신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어렵다.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나중을 '추측한다'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면, '아마 그 사람들 키스 했을것이다' 와, 그 이유로 '모월모일 이후로 이러저러한 태도가 바뀌었다' 까지는 어느정도 '앎'의 범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럼 언제 그 다음단계를 가겠냐" 고 물어보면 내가 무슨 대답을 해 줄수 있으리. 탐정소설에선 대개 추리를 통하여 미래를 예측한다지만 그들이 그걸 얼마나 확신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생각은 한다고 해도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반대의 경우로 답답할때는 판단의 근거가 위처럼 설명하기 힘든 수많은 이유들이라 그것들을 근거로 주장할 수 없을 때이다. 분명히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주장은 해야 되겠지만, 그 이유가 쉽게 말하기 껄끄러울 때나 상대가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하기 힘들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엔 적당히 계산을 한다.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도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경우엔 그냥 입닫고 있는다. 확신이 강하게 선다거나 손해가 클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눈 딱감고 일단 주장을 편다. 대충 그것이 맞아들어가게 되고 그러한 일이 중복이 되면 그다음엔 주장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리 좋은 인상은 주지 못하겠지.)

만일 누군가가 지금부터 연습해서 저런 특기를 가지고 싶다고 상담해 온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한참 예전이라면 재미있다고 권하겠지만 지금이라면 아마 그 사람을 말리지 싶다. 살아가면서 모를 때 더 행복한것이 갈수록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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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4 03:09 2004/12/2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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