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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지겨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까지는 지겹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기대 없는 말에 답이 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놀라기도 하는 사실 너부터도 별 생각 없이 답을 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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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머리 아픈 이야기도 아니지. 그냥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야. 그 마을은 사람이 많아 복잡한 마을도 아니고 언제나 정신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마을도 아니지. 마을의 이름은 트라벨라였어.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마을이었대.
나이 어린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몇 있는 아이들끼리 열심히 놀기도 하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놀기도 하고 그냥 맘이 닿는 대로 발이 멈추는 대로 지내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이 아이가 이제 주인공이 되는 거야. 아주 어린 아이였다가 크고 또 크고 해서 열 살에서 두 해정도 더 지났을까 하늘에 별이 맑게 웃던 날에 이야기는 시작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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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두들 잠을 잘 때가 되어서 하루 종일 놀다 지친 아이도 방에 들어가서 쿨쿨 자고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자고 있는 아이를 누가 막 깨우는 거야. 잠이 덜 깬 아이를 이리로 저리로 끌고 가서는 “얘야 잠깨라, 잠깨.” 하면서 찬 물을 떠다주고 해서 아이는 파딱 정신이 들었지.
옆집 말고 마을에 보면 공터가 있거든. 그 공터를 넘어서 산에 가까운 이층집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니까, 바닷가 쪽에 있는 아이네 집하고는 반대쪽에 사는 할아버지인데, 그 떡도 안주고 안 잡아먹는 할아버지가 딱 나와서 아이한테 가방을 한개 떡 주고는 “이 녀석, 너도 이제 멀리멀리 갈 시간이다.” 이러는 거야. 갑자기 그러니 아이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 가방을 들고 밤이라 앞도 잘 안 보이는 길을 이리저리 둘러 작은 항구까지 가기는 했는데 너 같으면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겠어? 어 졸리네. 이런 생각도 해보고 나 유괴당하나? 이런 생각도 해보고 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이 마을은 유괴나 이런 것들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거든 아주 평온한 마을이니까 아이가 유괴라든지 그런 걸 몰라. 그래서 졸졸 잘 쫓아갔지.

3
배 앞에 작은 불이 켜져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셀 수 없어서 발가락까지 써야 할 만큼 사람들이 나와 있었어. 아이는 무슨 일일까 했지. 아이를 세워놓고 누가 조용조용히 말을 시작하니까, 원래 조용했었는데 이제 올빼미가 세수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가 되어버렸어. 옆에서 누군가가 지금 말해 주는 내용을 외워야 한다고 그래서 아이는 열심히 들었지. 그런데 우리는 듣고 외우거나 할 수 있지만 얘는 역시 애는 애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어떻게 해.
이 마을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마을을 떠나서 아주 멀리 여행을 가게 되거든. 나중에 나이가 먹어 돌아온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없지.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있느냐고? 그건 글쎄...
이야기도 끝나고 아이는 아주 작은 배에 혼자 올려졌어. 바람을 타고 배가 막 바닷가를 떠나는데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 하는 거야. 점점 멀어지는데 저기 항구 쪽에서는 잔칫집에 갔을 때의 흥청망청 소리가 나잖아. 그래서 아이는 막 돌아 가고 싶어졌는데 배를 타고 있으니 갈 수가 없지. 점점 멀어지니까 소리는 안 들리고, 배는 고프고, 원래 자던 중이었고 해서 아이는 금방 이불도 안 덮고 냠냠하고 자버렸어.

4
갈매기가 머리위에서 콕콕 하고 딱따구리 흉내를 내는 바람에 아이는 일어나버렸어. 밤에 그냥 엎어져서 자버렸더니 아이는 으슬으슬 춥고 몸도 아프고 그렇지. (그러니까 더워도 이불은 꼭 덮고 자야해)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에서 잠을 깨니 내가 여기 왜있지 하고 아이는 멍-. 먹을 것 두리번두리번 하다가 과일주머니를 찾아서 사과를 하나 꺼내 먹었어. 그리고 덜컥 겁이 나버렸지.
넌 벌써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세상은 아주 커다란 평평한 판으로 생겼다고 두 해 전까지 아이는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이도 배워서 알고 있지. 믿어지지 않겠지만, 같은 땅 위에서 누구는 위로 바로 서있는 동안 반대쪽에서는 뒤집힌 채로 사람이 살고 있어. 중력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이 거꾸로 떨어지거나 그러지는 않거든. 그래서 땅이 커다란 팔면체인데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지.
예전에 유명한 과학자가 그걸 증명을 했는데 멀어지는 배가 똑같은 비율로 조금씩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 없어지는 것을 보고 땅이 평평하지 않고 각이 져 있다는 것을 알아낸 거래 그런데 그러면 계속 가다가 보면 갑자기 바다가 기울어지는 때가 올 텐데 아이는 그게 무서웠지. 그런데 다행일까? 저어기 배가 보고 있는 앞에 아주 넓게 수평선의 끝에서 끝을 이을 정도로 큰 땅이 보이는 거야.

5
배가 땅에 딱 닿고 아이는 배에서 내렸어. 가만 보면 참 마을사람들이 무심해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가방을 둘러내고 내렸는데 엄청나게 넓은 백사장만 있네. 그래도 이 아인 아직 겁이 뭔지를 잘 몰라. 겁을 낼만한 일이 있는 동네에서 자라지를 않았거든. 이렇게 조개도 주워보고 저렇게 모래성도 쌓아보고 하다가 모래 속에서 돌로 된 작은 길을 찾아버렸지 뭐야. 모래에 덮여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아이는 조금씩 따라갔어.
길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나니까 작은 문이 나왔어. 네모난 문을 손으로 밀고 들어가니 앞에 아주 긴 길이 나오는 거야.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긴데 길에 서있는 건물들이 모두 똑같이 생겨있지. 네덜란드에 가 본적 있어? 네덜란드도 그렇고 영국도 약간 그런데, 길을 하나 두고 양 옆에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길을 따라 답답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첨엔 이상하지만 나중에 보면 참 예뻐 보이지. 그런데 아이 앞에 있는 건물들은 네덜란드처럼 조금씩만 다르게 생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똑같이 생겨 있는 거야. 못 하나도 빼놓지 않고 똑같이 생겨있는데 아이는 집짓기놀이로 만든 집들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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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2 03:47 2003/09/22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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