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나날이다. 학부 시절과는 다르게 대학원에서는 할 것이 하나밖에 없다. "공부." 대학원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대학원생들은 왜 동아리를 잘 하지 않고 자치단체를 만들지도 않나 했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하나밖에 없는 할 일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부생활이 순식간에 끝날 줄 알았으면 더 놀고 더 공부했으리라.
시간은 참 쉽게 흐른다. 살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싸고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못 느끼게 될 때가 많다. 최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버린 시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노트북 유저가 되고, 컴퓨터 공학과에서 필요한 것은 어딘가에 있을 서버의 시꺼먼 콘솔화면이다 보니 특별히 리눅스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리눅스가 주 운영체제였을 때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여 2001년 이후로는 계속 윈도우를 써 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00년 당시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었을 때는 참 힘들었다. 리눅스를 깔고 제일 처음 했던 일은 랜카드 잡기, 그다음은 alsa 사운드 드라이버 컴파일하고 설치하기. 당장 쓸려고 시작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깔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www을 사용하기 위하여 모질라 0.x대가 나왔다고 기껏 내려받아 컴파일하고 깥아보니 제대로 보이는 페이지는 하나도 없고 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느린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 레드햇이라는 회사가 뜰려고 하고 있었고, 한글지원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해서 바꾸어보던 시절이었다.
2005년이 되었다. 물리학과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물리학과를 선택하여 NCSL에 들어왔다. 창우형에게서 컴퓨터를 한 대 받았다. 어차피 컴퓨터로 할 일은 까만 화면 보는 일이다. 인상이가 하는 말도 있었고 하여 페도라 코어(어느새 유료 서비스화가 된 레드햇 리눅스의 커뮤니티 버전이랜다)를 깔아보기로 하였다. CD를 받고 처음 창우형에게 물어본 것은 "형 요새는 LILO에서 1024실린더 제한 없어졌어요?" 였다.
그리고 30분 후 문화충격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였다. LILO는 어디가고 GRUB이라는 녀석이 깔리더니 그래픽 화면에서 설치를 하고 장치는 자동으로 다 인식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우스 휠을 사용하려고 해도 수정이 필요하였다) 게다가 어느새 그놈이 gtk2라는 라이브러리와 함께 쓸 수 있을만한 물건이 되어있었다. 한글 지원에 대한 조치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했다. 오픈오피스는 실체가 있는 물건이 되어 '문서 작업이 가능한' 상태였다. rpm은 활성화 되어 있고, yum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업데이트 도구가 나와 있었다.
하루종일 이것이 리눅스인가? 하는 생각에 익숙해지느라 애먹었다. 더이상 재미있는 장난감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운영체제였다. 결국 랩 컴퓨터는 페도라 코어로, 노트북은 데비안이 관리가 가장 속편했다는 오래전 생각에 따라 데비안 계열인 우분투로 와버렸다. 마치 예전에 쓴 적이 없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쓰는 기분이다. 예전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였던 작업들이 이제는 전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번 학기는 랩배정도 되지 않았고, 코스웍을 따라가느라 랩에서 하고 싶은 연구는 잠시 미루어두고 논문들만 리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한 학기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해갈까? 변화와 발전이 빠른 분야이다보니 지금 하루하루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분명히 기초는 필요하니 코스웍을 철저히 해야 하지만, 하고 있었던 연구도 포기하기 힘들다. 둘 다 동시에 했으면 하지만, 그럴 능력은 모자란다.
신경을 쓰던 것들도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았던 분야는 얼마나 더 빨리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관심사의 수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소홀히 하였던 다른 관심사들을 한 번씩 돌아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관심사들을 돌아보며 느낄 '격세지감'의 감정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