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든다는 것은 자란다는 말이나 어른이 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열살의 소년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오십줄의 국회의원이 자신만이 현인인 양 아무리 윽박을 질러도 그 사람들에게는 철이 들었다는 표현을 붙이지 않는다. 그 쪽의 입장에서 '당신은 철이 들지 않았다'는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뭘 모르길래 철이 덜 들었다고 하는거야?'
대학교에 들어가도 철이 들지는 않는다. 돈을 번다고 철이 들지도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다고 철이 들리도 없다. 철이 든다는 말은 애매한 말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철이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는 비슷하게들 안다. 신기한 일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20대 중반 즈음이 되면 철이 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빨리 철이 들고 싶어도 철이 들 수 없는 이유는 그 과정이 본인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기 때문인 듯 하다. 흔히들 한 세대를 30년 주기로 잡는다. 그건 요새 이야기이고, 지금보다 일찍 결혼하였던 과거에는 한 세대를 대략 25년 정도로 잡아도 될 것 같다. 한 사람이 20대 중반 정도가 되면, 삶을 경험한다. 그 갑작스러움은 사춘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신과 함께 살아왔던 할아버지 세대가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고,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던 바로 윗터울 친척들과 지인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한다. 본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같이 살아갈 것으로만 여겼던 주윗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인생은 수많은 파도들이 어울려가는 것이다. 그 안의 총체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속에 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스무살 중반까지 나이들어야 한다. 그 이전에 자신이 철이 들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어린 날의 치기일 것이다.
철이 들면 삶에 겸손해지게 된다. 세상이 말하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생각하게 된다. 보편적인 지식이라고 믿던 것들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째서 세상에서 돈이 가장 큰 가치인지, 아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위장하며 인간을 먹고살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살기위해 먹고, 먹기위해 버는 사람들이 안타깝기보다는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째서 생명에게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삶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지 알게 된다. 동시에 세상이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철이 들면 지혜를 쌓아 나중에 멋진 노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중학 수학에서 고차 방정식에서의 인수분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그런데 막상 다른 사람에게 그 과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인수분해를 가르치기 위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많이 해 보면 돼' 이다. 아마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듣게 되면 '철 들면 다 알게 돼'라고 대답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철이 드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결혼할 때 즈음 되면 다 알게 돼' 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당길 수도 없고 뒤로 미룰 수도 없는 그 과정을 보며, 오래 전에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들었던 어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