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과 아이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5/05/09 04:00 | inureyes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꼬마 아이를 보았다. '파워레인저 다이노썬더' 로 변신할 때 쓰는 변신도구 (일종의 뱃지이다) 장난감을 들고 죽어라 살아라 하면서 투닥투닥거리고 있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 변신장난감을 보며 아이들에게 '그 조잡한 플라스틱 뱃지가 무슨 의미가 있냐?' 하고 물을뻔했다. 입밖으로 나오려던 말은 그냥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실은 그러한 장난감들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장난감이 있으면 상상속에선 그 장난감과 함께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이 되어 지구를 지키기도 하였다. 레고블럭으로 수많은 세계를 만들어보기도 하였으며, 팔뚝에 물총 집어넣고 다른 팔로 꾹꾹 누르며 에네르기파라고 쏘기도 했었다.

어느날이었을까. 초등학교 오학년의 한여름날 오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크립톤 행성에서 온 것도 아니고 후레쉬 별에서 온 것도, 샤이어 성에서 온 것도 아닌 나는 그 어떤 영웅도 될 수 없었다. 플라스틱 물총을 들고 있는 나는 결코 손오공이 아니었으며, 죽도록 노력하면 크리링이, 그렇지 않으면 천진반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원하는 그런 이상형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실력을 쌓는 것이었고 실력을 쌓으려면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끝장을 보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며칠동안 우울했었다. 십오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이 날 정도로 그 깨달음은 어린 아이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 때 부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의 이름도 긴 '파워레인저 다이노썬더' 변신 엠블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혹시 손오공도 아니고 크리링도, 천진반도 아니고 그냥 내퍼와 라데츠가 지구에 왔을때 '전투력이 겨우 5야?' 하면서 한 손으로 죽여버리는 시민I 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시민도 나름대로 희로애락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게다. 일상에 행복이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 '시민' 마저도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을. 그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천진반이나 크리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아직도 덜 자랐기 때문일것이다.


삼성아파트 앞에서 투닥거리며 내리던 두 아이는 그만 아스팔트 바닥에 플라스틱 장난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투명 플라스틱 뚜껑에 폴리에틸렌으로 되어있을 장난감은 금방 금이 가고 깨지고 말았다. 투닥거리던 두 아이는 잠시 멍해졌고, 이윽고 세계평화는 뒤로 한 채 네가 잘못해서 깨졌니 마니 하고서 다투기 시작했다. 뒤이어 내린 아이 부모님들의 '얼른 조각 주워서 길에서 나오라' 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과거에 머무르던 마음도 정류장에 내려놓은 채 마을버스는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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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9 04:00 2005/05/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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