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가르치던 해욱이가 어느새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할 때가 되었다. 집이 포항이니까 학교가 있는 인천으로 떠날 예정이라, 떠나기 전에 은진이와 함께 통집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다.
'대학에 입학할 신입생에게 해 줄 말이 있느냐?'는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었다. 당연히 고등학생의 눈에는 반발이 넘실넘실대었지만 그 말이 가장 해주고 싶었다. '돈은 쉽게 빌려주지 말아라' 라든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말아라' 같은 신라시대 사람들도 했음직한 이야기를 그 뒤에 이어서 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에서 나오는 실천사항일 뿐이다.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 하나의 이야기를 쉽게 말하면 처음에 말해 주었던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다' 가 되는 것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눈을 믿지 말라' 는 말이 된다. 기만과 사기가 난무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 과 그들을 바라보는 '눈' 에 관한 이야기이다.
흔히 사람들은 '고등학교 친구들까지가 진짜 친구'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실은 우스운 말이다. 그 말은 사람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를 지어버린다. 그렇지만 쉽게 우스운 말로 치부해버리기도 힘들다. 그 말이 널리 통용되는 이유가 그 말이 사회에 관한 어느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점이다.
고등학교 졸업은 지금까지 비슷한 틀에 들어있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을 따라 분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도앞의 개미처럼 마주치게 한다. 졸업한 사람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이후에 먼저 사회에 나와있던 사람들과 함께 자의보다는 그동안의 자신이 평가된 대차대조표에 의해 타의에 의하여 주욱 줄 세워진다. 너는 음식을 만들거라. 너는 책을 쓰거라. 너는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거라. 너는 놀아라. 등등등.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구조인 동시에 그들이 피라미드처럼 죄우뿐만이 아니라 상하로 엉켜있는 산이다.
좋게 말해서 졸업 이후에 고등학교 이전에 만난 정도의 친구를 만났다는 말은 그들이 스펙트럼 상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다거나, 아니면 고등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제대로 박치기할 환경을 겪은 적이 없다는 말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한 경우가 아닌 관계는 다른 이유에 의해 그 순수성이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부정할 수가 없다.
세상은 그렇게 슬픈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하고싶은 말은 '눈을 믿지 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쁜사람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한 이유는 아직 그 파도를 마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부분의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에게라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으니 믿어보라'는 말을 해 주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이 아주 많다. 대충 육십억이 넘는다. 하지만 콩고에 가서 토인들과 인류학을 논할 사람이나 시베리아에서 에스키모개들에게 먹이를 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안면이라도 익을 정도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세상은 크지만 개개인의 세상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눈을 가지고 자신의 세상에 들어온 천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사람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주위의 사람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눈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은 없어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니 생각힐 필요가 없을것이다.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초중고 학생들의 눈은 정의, 우정, 사랑, 도덕등의 보편적인 가치를 많이 담고 있다. 그렇지만 의무교육을 마치고 나온 대학생이나 사회인들의 눈은 보편적가치가 담긴 투명한 안경보다는 사회에서 자신이 위치한 스펙트럼에 의해 만들어진 총천연색 색안경을 끼고 있다. 그 점이 문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안경에 의하여 사람을 판단한다. 하지만 그 색은 눈에 들어오는 빛들의 색을 걸러낸다. 초록색 안경은 초록색은 통과시키지 않고 반사하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보인다. 어차피 모두의 안경은 사회에서의 위치에 의해 물들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척은 거짓이고 자기기만이다. 하지만 이미 색안경을 끼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눈이 받아들이는 시각을 부정하는 일은 할 수 있다.
'눈을 믿지 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기준은 네가 만든 것이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고 믿지 마라. 사회에 부딪친 후 너의 안경은 색으로 가득찰 것이다.
'눈을 믿지 마라.' 자신의 판단을 부정할 수 있을 때만 너에게서 해방되어 볼 수 없는 것들도 보게 만들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네 색안경의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착각하지 마라. 자신의 부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자유로와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는 학생에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해줘야했다. 나는 해욱이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선생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선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의 이유를 깨닫게 되고, 역사를 넘나드는 오래된 말들의 의미를 알게된다. 그러한 깨달음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의 판단은 조금 더 먼 미래로 미루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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