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한 달 동안 물리학 과외를 하고 있다. 아는 분이 이야기하셔서 과외를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포항 생활 6년 동안 한 번도 보내본 적이 없었던 포항의 8월을 보내게 되었다. (대학원생이라 선택의 기회가 없어진 것도 한 이유이긴 하다.)
지금까지 가르쳐 본 학생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 아쉬운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라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학적 기초는 아직 부족한 점이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몰라 한참을 헤매었다. 미적분을 잘 모르니 에너지와 힘과 거리와 속도의 관계를 설명하기 힘들다든가, 초월함수를 잘 모르니 떨개(oscillator의 우리말이라고 한다 -_-; )에 관해서 설명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이라면 어떤 설명을 들어야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수학부터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미분과 적분부터 순서대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설명하려니, 미적분의 근간인 epsilon-delta 를 설명해도 이해시키는 힘들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미분이나 적분을 하는 '방법'만을 가르쳐주고 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예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학교 물리학 선생님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려다 말고 '나중에 대학교에 가면 배우게 된다'고 말씀하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 일이지만 꼭대기에서부터 탑을 쌓아 내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과자 하나에 과자 하나를 더하면 과자 둘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이에게 서로 다른 현상들 사이에서 '수'라는 공통된 개념을 뽑아낼 수 있는 추상화의 과정과 그로 인한 수 체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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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원리나 기초적인 개념이 학문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문의 시작은 현실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에 보이는 귀납적 현상들 사이에서 연역적(이라고 생각되는) 현상을 가정하고, 그에 대한 탐구를 해 온 것이 과학이 발전한 과정이다. 따라서 학문의 기저에 있는 것은 '경험'이다. 그래서 처음 어떤 학문을 배울 때에는 역사적으로 알려져 온 순서대로 배우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과학의 발전 과정이 시행착오의 연속일 뿐이더라도, 인간이기에 밟아올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이다. 그래서 이해가 쉽다.
학생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어느새인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외적인 것들 때문에 지쳐가고 있는가 보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물리학의 가장 아래에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의 호기심이 있다. 과외받는 학생에게서 그러한 호기심을 본다. 그 표정이 이 험한 길을 왜 택했었는지를 일깨워 준다. 마치 내가 과외를 받고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