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버스를 타고 학교로 내려왔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서울과 포항 사이의 다섯시간이 왜 그렇게 지겨웠는지, 책을 한 번 못들고 타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도서관에 가서 소셀책이라도 한 권 못 빌리면 차라리 차를 다음 차를 타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무언가 할 것을 만들어서 탔다. 언제부터였는지, 차를 타면 금방 잠을 자버리게 되었다. 아, 그게 1학년 어느 날엔가 밤을 새고서 서울에 갈 때 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로는 자리에 앉았다가 눈을 뜨면 서울이고, 눈을 뜨면 포항이고 그랬다.
3학년이 되어서 나이가 들어 잠이 없어진건지(...) 요새는 차를 타도 잠이 안온다. 그렇다고 차에서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에코씨의 '바우돌리노'를 들고 탔는데, 결국엔 바우돌리노는 코몰로 가는 지하철에서 다 읽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뭘 하는 것도 아니다. 멀티가 노트북으로 변신한 후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책도 읽고 만화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그것마저도 들고다니기 귀찮아서 안들고 다닌다. 아, 노트북이 동반자가 된 이후로 차에서 잠을 안잤나보다.
차에서는 그냥 앉아 있는다. 창 밖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 좀 하다보면 시간금방 가버린다.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뭐가 그리 많았는지, 그냥 밀려오는 생각을 하나씩 처리하다보면 금방 서울이고, 금방 포항이다. 예전같았으면 다섯시간은 커녕 한 시간만 아무것도 하지않고 앉아 있으라고 했어도 죽을 상을 지었을텐데, 발전은 발전이다.
서울 포항사이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버스를 탄 후엔 바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 (고등학교때 붙어서 버리지 못한 버릇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고보면 절대 모를리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야기하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싶어도, 한 마디로 또 다 뒤집혀 버리고는 한다.
얼마전 월드컵 기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미국대 멕시코전을 관람하러 전주에 간 일이 있었다. 포항에서 전주까지 직행노선이 없기 때문에, 대구로 갔다가 그 곳에서 차를 갈아타고 전주로 가야하는 고생길이었다. 편도 여섯시간인데 아침에 기말고사 치고 당일치기를 하려니 축 늘어졌다. 대구에서 차를 타며 혹 경기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했다.
대구에서 전주를 가는 길도 가깝지가 않아서, 오지 않는 잠을 자려고 하다가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옆에 앉은 분은 -형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처음에는 불렀으나... 아 뒤를 보면 안다- 포르투갈 서포터스를 하고 있는 전주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구에서 자라고 경북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나와서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국사와 도덕을 가르치고 계시단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갔는데, 끝에 가서 딱 쫄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별별 이야기를 다 해가면서 재미있게 말하던 그 형이 (생활의 지혜라고나 할까... 선생님들이 연봉이 2000만원 정도에서 고정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여선생님들이 얼마나 중매때 인기가 좋은지도 ==; ) 알고보니 전주에 있는 남자 고등학교의 학생부 주임-_-; 이었던 것이었다... 살아 생전에 학생부 주임선생님하고 세시간 반동안 웃고 떠들줄은 몰랐었는데 말이다. 누가 알았겠어. 알고보니까 학생부 선생님들도 엄청 고달프게 살고 있더라고.
그러고 보니 나도 그 고등학교 시절에 생각하던 大학생인 것이다. 무언가 사회속에서 살고 있고 내 이야기가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겐 잘 먹히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러버린 후의. 생각해보니 결혼한 친구도 있겠다, 충분히 나이가 들어버린 거구나 학생 주임하는 형이 왜 야구방망이가 아닌 골프채로 학생들을 체벌하는게 편한가를 내 일 아닌듯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축구를 보고 돌아오면서, 버스가 달리는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내가 시간을 뛰어가는 속도가 이렇게나 빠른데 하면서. 하지만, 시간을 뛰어가며 커진다고 생각하는 나도 내가 아는 세상이 커지는 속도에 비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느리니까.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어떻게 버스나 기차에만 타면 그렇게 계속 자면서 갈 수 있을까 하면서 의아해 했었다. 그리고 한 때, 이래서 어른들이 계속 잠을 자면서 왔다갔다 하는구나 하고 자신을 보면서 이해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잠도 자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시간이 지겹지 않은 내가, 어릴 때 생각하던 나중의 나보다 더 나이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시간상에서나, 공간상에서나, 여행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