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1/10/15 03:15 | inureyes

돌아가는 길은 꽤 멀지만 가깝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이곳 저곳을 헤메고 다녔다. 익숙하지만 더이상 익숙하게 되지는 않을 그런 길을 따라 또는 찾아 다녔다.

새벽이었다... 네시가 조금 넘었으리라.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그건 내 머릿속의 무엇인가가 그 곳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와 헤어져 피곤한 몸을 옮기면서 집으로 가는 길. 그리고 집에 들어서기 전의 몇 분동안에

나는 다른 시간에 가 있었다. 설명할 수 없다.

안개가 옅게 끼어 있었다. 안개는 가로등 빛을 머금고 빛을 돌아안고 있었다. 하늘은 분명히 완전히 검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별들이 그 곳에서 예전과 같이 완전하지 않은 육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바람이 와서 얼굴을 만지고 지나갔다. 가습기 냄새가 났다. 눈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조금씩 옅은 분홍색을 띠는 하늘의 끝에는 점멸하는 인간의 별이 있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속에 내가 있었다.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옆에는 재환이가 있고 재형이가 있고 하나님이 있었다. 우리는 새벽기도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지금 노력하는 우리가 그 노력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게 해 달라고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숨쉬는 곳은 알 수 없는 어딘가에 떨어진 공간이었다. 안개가 차가웠다. 한강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무엇인가로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손 끝에 희미함이 잡혔다. 희미함은 희망도 아니었다. 기대도 아니었고 갈망도 아니었다. 그건 우리 자신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나는 이십일세기의 한 끝 위에 서 있었다. 정확히 오 년 전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로.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 달라진 시간 위에는 오 년 전을 함께 했던 누구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때 희미함으로 만져졌던 삶의 무게는 모두의 몫과 함께 각자의 위에 얹혀 있으니까.

눈은 젖어 있었지만 입은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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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5 03:15 2001/10/15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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