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기록 / 시선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5/02/12 00:12 | inureyes
기록 하나가 너무 커지는 것이 아닌가해서 지난달 말에 웹로그를 하나 더 만들었다. 이 기록에 분류를 하나 더 만들어 넣으면 생활에 대한 원 기록을 압도할 수도 있을것 같아서였다. 새로 만든 기록은 2005년 2월 이후부터 읽는 '책'에 대한 웹로그이다.

지금까지는 읽는 책을 정리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전공서적 이외의 책을 읽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니 읽는 책을 하나하나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오산이었다. 예전에 하루에 한 권 꼴로 책을 읽었다면 2000년 대학에 들어온 후로는 총 권 수로 어림잡아보니 나흘에 한 권 정도이다. 권수는 사분의 일로 줄었는데 2월 이후에 읽은 책들을 정리를 하다보니 이제는 한 권당 페이지 수가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게다가 예전처럼 매일 집에 책이 있고 매일 일정하게 책을 읽어대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거나 일을 할 때는 전혀 읽지 않다가 여유가 생기면 기숙사나 도서관에서 엄청나게 몰아 읽도록 패턴이 바뀌어 있었다. 당연히 정리하기는 더 어렵다. (진작 알았으면 시작조차 안했을지도 모른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책에 대한 기록을 만들며 수많은 생각들이 거쳐갔다. 거쳐가는 텍스트들의 내용을 얼마나 그러잡고 있을까. '독서는 머릿속에 어느 책에 무슨 내용이 있는가를 알려주는 인덱스를 만드는 작업이다'고 생각해왔다. 책을 한 권 한 권 모두 머릿속에 넣고 있으면 좋겠지만 독서의 양이 많아지니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권씩 읽은 책에 대하여 짧게나마 정리를 하다 보니 그동안 손가락 새로 흘러나간 책이 얼마나 될까 아쉬워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록을 정리하다보니 힘들더라. 덕분에 다른 것들을 기록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두주일 하니 새로 버릇이 되어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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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적당히 하되 과거로의 반성의 단초는 확실히 되도록 해야 의미가 있다. 예전에 남긴 기록 에서 기록을 끊임없이 남기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 적이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면 그 기록은 본인의 감정과 그 시선에 의한 사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기록을 직접 남기기는 어렵다. 감정은 강렬하게, 하지만 객관적으로 남겨야 한다.

'솔직하게' 기록을 남기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인간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다. '솔직하게 남긴 기록'은 다른 말로 이미 본인 안에서 가공된 기록임을 뜻한다. 그렇다고 하여 객관적인 기록만을 남겨서도 안된다. 그 기록은 현재성이 없는 반쪽짜리 기록이다. 그러면 그 중간을 찾아서 자신을 보는 것은 가능할것인가.

사람이 자신의 손을 볼 때에는 손등을 보거나 손바닥을 보거나 두 가지중 한 가지만 가능하다. 동시에 한 손의 손바닥과 손등을 볼 수가 없다. 사람은 충분히 건방질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손등과 손바닥을 동시에 볼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무리하게 시도한 나머지 손을 세우고서는 그 옆만을 보게 된다. 물론 그 상태에서는 손등도, 손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은 손등과 손바닥을 동시에 보고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이미 자신의 시야는 손의 옆만큼이나 시야가 좁아져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야의 균형은 어렵다. 하물며 자신을 향하는 기록에 있어서는 얼마나 어려우랴.

자신의 시야의 좁음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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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2 00:12 2005/02/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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