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동안 머리에 부하가 걸렸던 것을 확 풀어버렸다. '매우'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한 번에 네가지씩 가지고 고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 푸는 방법이 끝없는 수면이란게 좀 그렇긴 하다. 타자 치면서도 또 졸린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타자 치고 있으면서 말이지.) TT, 연구 주제 두 개, TNF, 이올린, 다음주는 각개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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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되었지만, 물건들의 생산단가와 생산 과정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아직도 '명품 메이커' 의 위대함을 찬탄하는 사람을 만났다. 중학교 이후로 둥글어지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사람을 보면 속에서 신물이 나온다. 그것도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억지로 만난 사람의 경우 더욱 그렇다. 웬만하면 그런 자리에는 그 사람을 부르지 말든지 나를 부르지 말든지 하라고 말하고 싶다.
모 자동차 이하를 타고 다니는 남자는 말도 걸지 말라는 여자를 만난 적도 있다. 농구화가 50만원 넘는다고 농구하다가 발 안밟게 조심하라는 남자와 농구한 적도 있다. 자본주의의 구조가 어떻게 기형적으로 왜곡되고 있는지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힘 또한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가장 저질적으로 세뇌된 사람까지 포용하기엔 수양이 부족하다. 그런 사람이 싫다. 싫다는 감정을 만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은 만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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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톨스토이처럼 우화의 형식을 빌려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질문을 머릿속으로 계속 던지다가 더 큰 질문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엄청나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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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는 것을 보니 무섭다. 어째서 갈수록 설날, 단오, 석가탄신일, 추석, 크리스마스는 그저 달력의 빨간 날이 되어 가는 것일까. 그 문제가 자신 안에 있는지, 사회에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내가 의미를 즐길 여유가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에 집착하느라 속의 의미를 외형에 고정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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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올바르지 않게 돌아간다면 그에 대하여 비판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사회가 올바르게 -교과서에서 명시하는 '기본'을 따라- 돌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하는가? 그것들이 바뀌는 것이 가능한가? 역시 이성적으로 내린 대답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간단하게는 쓰레기 보이면 줍기라거나, 길거리에 몸이 불편하신 분들 있으면 천 원씩 드리기 부터 (그 분들이 아무리 많이 벌어봐야 일반적인 수입에 턱도 없다. 맹인분이 지하철 끝에서 내려 돈통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것도 봤지만 그게 자신에게 도움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내진 못하였다.) 복잡하게는 복잡계 연구와 TNF까지. 그것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역시나 알고 있는 답이지만 힘들것이다.
그것이 당장 세상을 바꾸기에는 힘들어 보인다는 것 -시쳇말로 '택도 없다는 것'- 을 알면서도 한다.
어제 동생과 사진기 이야기를 하였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광량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가지 방법이 있다.셔터 스피드를 길게 하여 노출을 오래 주는 방법이 있고, 렌즈 구경을 크게 하여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빛의 양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렌즈의 투과율을 좋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개인이 세상을 바꾸는 법도 세가지 방법이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하거나, 많은 사람이 함께 하거나. 또는 쉽게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거나.
한 명의 힘은 약하다.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개개인의 힘이 모인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고 역사였다. 할 수 없는 일을 들먹이며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 할 수 있는 것을 해서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환경정책, 복지정책을 바꾸거나 웹의 권리를 개인에게 돌려주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해 낼 것이다. 개인의 힘은 얼마나 미약한가. 동시에 개인의 힘은 얼마나 강력해 질 수 있는가. 신념이 목표를 만들고 목표가 계획을 유도하며, 계획은 실천을 이끈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행동하라." 나의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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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디오스타'를 보았다. 가족들과 함께 보고 나오며 80년대의 이야기나 라디오 시대의 추억, 박중훈씨와 안성기씨의 오래된 필모그래피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마음속에 남는 것이 있어 체로 치고 또 쳐내니 결국 '사람 이야기' 가 남았다.
지난주에 보았던 '타짜'도 사람 이야기이지만, 두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이 달랐다. 왜 절에서 팔면상들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사람인것을. 왜 칠정을 이야기하고 백팔 번뇌를 이야기하는가. 우습지만 두 영화에서 그 그림자를 보았다. 감독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사람이 지각에 한계가 있으니 성선과 성악만을 논하는 것처럼, 잠자리눈을 보고 두 개라고 말하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