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4/11/07 03:55 | inureyes
기숙사에서 칵테일 클럽이 있었다. 오후 내내 머리가 아팠는데, 타이레놀을 한 알 먹으니 꽤 괜찮아져서 칵테일 클럽에 가서 이것저것 즐겁게 칵테일을 만들어 먹었다. 술을 많이 먹으면 의식이 분리가 되어 이 의식 따로 저 의식 따로 흘러간다. 만들어 먹다보니 꽤나 많이 먹게 되어서 마시면서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끝없이 지나갔다.

휴게실에 가득 모여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을 보니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되었다. 어떻게 저떻게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버렸다. 안심일까 긴장감일까? 그런 것이 한 번에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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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으로 들고 나와서 당선되자마자 "우리 질러버립시다." 했던 때와, 준희형이 영어동 만들자고 (혼자 살기 쓸쓸하다고ㅎㅎ) 같이 의기투합하던 때와, 형이 기획안 만들면 납득가능한 서류로 만들어서 그걸 들고 주거운영팀부터 인문사회학부까지 다녔을 때와, 위아래로 닦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천신만고끝에 자치동안이 허가 되었던 때를 기억한다.

기숙사자치회 규약부터 뒤집어 엎은 다음에 맨바닥에서 새로 시작하자고 하던 때와, 병역특례를 하려고 하다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면 기숙사자치회장 해 볼 생각 있다고 하여 학교로 돌아오던 때와, 제멋대로 '아싸 뒤집어 엎기 좋아하는 사람 여기 붙어라!' 했을때 뭘 믿었는지 모르게 믿고 집행부 지원해준 안면있는 후배들과 '무언가를 해보겠다' 는 생각으로 지원해준 안면없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시스템은 견고하게. 조직은 유연하게. 권력은 동등하게. 의사소통은 독립적으로. 덕분에 완전히 뒤집혀진 체제와, 뒤엎어진 함께한 사람들의 머릿속과, 좋은말로 자유방임 사실은 '무책임회장' 으로 대표되는 실험아닌 실험을 떠올린다. 통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의 조직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의사집단의 가능성을 보고자 함이었다. 성공일지 실패일지 예단하기 힘들지만 '무사히' 끝났다. 적어도 판을 뒤집어 엎은 채로.

지금까지도 그 뒷수습을 하고 있는 현 회장단들의 눈총이 선하다. 하하 알아서들 하세요. '어째서?' 라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단지 '무기력한 정체를 타파하는 방법은 보수보다는 기존 체제에 대한 완전한 포기가 빠르다' 는 신념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뿐.

욱이 승구신 민아씨와 함께 모데라토도 한바탕 엎었고, 은진씨 재완씨 경원군과 함께 기숙사자치회도 통째로 엎었다. 언젠가 "형은 가는 곳 마다 단체를 엎어요"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 사실은 문제가 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괜찮은 결과가 나왔지만 '혁신'은 기존 체제와의 타협을 거부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래.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고 해도 가능성이 안보이면 모조리 엎어버리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그 위에서 함께 새로 쌓아 올리면 되는거다. 유일한 방법이 아닌 것은 아는데,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부수려고 하는 사람은 적은 세상이니 균형을 위해서 일단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지금 나에게 그 당시와 같은 약간의 통찰이 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은 시간은 관심사를 흐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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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가 망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언제나 내 대답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였다. 기숙사자치회가 흔들릴까봐 우려하는 사람들을 계속 봐왔지만 나에게서는 '걱정마시라' 라는 대답밖에 끌어내지 못했다.

기본부터 쌓아올린 조직에는 예전에는 없던 원칙 하나는 시스템상으로 존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자기조직화." 시스템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시스템을 만든다.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그 연결의 성격을 보는 것이 빠를 때가 있다.

일 안하고 노는 회장이 예전에 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 정도. 저지를 때 저지르고 나중에 돌아보며 구경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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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7 03:55 2004/11/07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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