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0/06/25 18:28 | inureyes
포항공대에 다니고 있다. 이 곳에 와서 한 학기동안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생활하면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점들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대학에는 있다고 믿었지만 포항공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행동하는 것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포항공대에서는 환경의 특수함 때문인지, 학업에 의한 중압감때문인지 그 중 어떤 모습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전부터 존경해왔던 인물이 있다. 과학자이지만, 단순히 학문적 업적을 남긴 과학자로서 좋아하는 것은 아닌 사람이다. Andrei dmirievch sakharov. 지금은 이미 러시아 공화국이 된 옛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이고, 옛 소련이 지금의 러시아공화국이 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물리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서적을 읽게 되었고, 그래서 과학자 사하로프를 알게 되었다. 핵융합 반응의 실험적 토대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토러스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 구조-토카막이다-를 제창한 사람이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사하로프의 평전을 접하게 되었다. 그 곳에는 물리학자중의 한 사람이 아닌 반핵운동가, 인권운동가인 사하로프가 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련의 수소폭탄의 개발에 이바지 한 사람이다. 1953년에 서른 두 살로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된 천재이기도 하다. 그의 사회적 지위는 아주 높았다. 그가 속한 사회가 계급이 크게 부각되는 사회주의 사회였음을 생각해 보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명예 속에 젖어서 환락과 부를 즐기면서 살 수도 있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내가 좋아하게 된 부분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후회했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이다. 그렇지만 가치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조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가지지 않는 자세이기도 하다. 이 점을 나는 좋아한다. 물론, 후회할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나중에 내가 후회할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없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후회 자체를 피해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에, 사하로프와 같은 태도를 지켜나가고 싶다.

1958년 사하로프는 흐루시초프에게 핵실험 중지요청을 하면서 비판적 발언을 시작한다. 1968년에는 그가 작성한 논문인 <진보, 평화공존, 그리고 지적 자유에 대한 고찰>때문에 국가로부터 반국가적이라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모든 비난을 감수했다. 과학자가 낸 논문의 주제는, 민주와 인권 확립 이었다. 명예가 보장된 과학자에게 무엇이 그 논문을 쓰고 발표하게 했는가에 대하여 처음에는 많은 의문도 가졌었다. 지금은, 정말 아주 약간이지만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을 이끌어 나가는 신념에 대한 확신. 그 두 가지가 물리학자라는 직함 앞에 "반체제"를 붙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이 논문이 서방쪽에 공개되고, 그는 1980년 1월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항의와 관련되어서 공업도시인 고리키로 강제 유배 된다. 그 곳에서도 그는 인권활동을 계속했고, 단식을 네 차례나 했다.

1986년 12월에 당시 서기장인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사하로프의 유배생활은 끝난다. 모스크바로 온 뒤에도 계속 반체제인사 석방과 인권보장, 아프가니스탄 침공 규탄활동을 계속하면서 고르바초프에게 개혁을 촉구했다. 1989년 4월에, 소련인민대표회의 대의원에 당선되고, 12월에 협심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정치개혁을 위해 활동했다.

인간이 아닌 대상을 다루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그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단순한 진리이지만 예전에는 그런 부분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었다. 하이젠베르크나 보어의 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위하여 일을 책임지고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적극적인 자세보다는 위의 사람을 속이거나, 현실을 외면 또는 적응하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쳐 이루어내는 약간은 부족한 모습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하로프를 알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한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과학자는 존경 받지만, 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과학이 존경 받는다. 그래서 과학자 자신이 가진 힘은 정말 작을 수 있다. 과학자가 ‘인물’로 존경 받게 되려면 이 두 가지는 만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일에 가치판단을 하고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사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과학이 아닌 인간을 존경하게 만든다.

그는 과학자지만 나에게 단순한 과학자는 아니다. 과학자로서의 '길'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였다. 그 때문에 나는 쉽게 자연계를 선택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 이 길을 걸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일에 생각을 가지고 해 나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싶은 건 너무 큰 욕심일까.

포항공대에서 잊기 쉬운 점들을 항상 상기시켜주는 인물, 그리고 꼭 포항공대에서 나와야 할 인물로 사하로프 같은 사람을 꼽아본다. 그리고 그 틀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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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25 18:28 2000/06/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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