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8/09/07 02:23 | inureyes

또 서울이다. 일주일에 천 킬로미터씩을 이동하는 삶이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일 때문이라면 좋을 텐데, 이번은 아니었다.

연구실의 막내인 미진이의 부친께서 작고하셨다. 주윗사람들보다 장례식에 참석한 횟수가 많아 장례는 굉장히 익숙한 편이지만, 이번에는 참석만이 아니라 조문객이 될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입장이 되어 저녁 내내 바쁘게 보냈다. 일의 측면에서도, 감정적으로도 굉장히 복잡한 경험이었다.

삶과 죽음은 굉장히 가깝다. 아니, 거리가 없다. 불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물건이나 사람들처럼,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그 사실을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과정이 삶을 더 질기게 만들고 있다. 다른 성장은 각기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의 성장은 항상 죽음과 함께 했다. 죽음은 삶의 양면과도 같아서, 죽음을 마주할 때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굉장히 아프셨다. 오랫동안을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이라는 불안 속에 지냈다. 아직도 2교시 중 담임 선생님께서 불러내 아버지께서 수술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시던 때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죽음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고, 언제든지 습격할 때를 노리고 있는 형체가 있는 관념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당시 다니던 학원의 물리학 선생님은 참으로 걱정을 많이 해 주셨다. 나를 차에 태워 매일 밤마다 서울 곳곳을 쏘다니셨다. 정말 많은 곳을 갔다. 사람은 어디에서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고, 전세계를 항상 여행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밤들은 지금 살고있는 도시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장례식장에선 육개장을 식사로 대접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육개장의 진한 색이 살아있음을 은연중에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란다. 당시의 서울의 밤은 육개장이었다. 공동묘지에서 얼마 가지 않아 나오는 집창촌 입구에는 차량 행렬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그 거리의 색은 너무나 강렬했고, 동시에 사람을 슬프게 하는 힘이 있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어째서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대답은 사춘기를 거치고 있을 중학생에게는 너무 복잡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나으셨다. 삶은 절대 그 이전과 같아질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가끔 아침에 울면서 깰 때가 있었다. 꿈은 물같아 금방 머리에서 새어나가 버려 왜 울었는지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남은 조각을 그러 모아 보면 그 이유는 꿈 속에서 누군가를 영원히 잃었기 때문이었다. 生子必滅의 진리에서 도망가고자 인간은 수없이 많은 관념들과 피난처를 만들어 냈다. 그렇지만 탄생과 만남, 이별과 소멸의 거대한 강을 기슭에 모래성을 쌓아 막을 수는 없다. 이해는 할 수 없어도 인정하는 것, 이해는 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삶과 만남과 이별과 죽음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슈트 차림을 싫어하는 이유가 좋은 기억과 연결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임을 새삼스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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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02:23 2008/09/07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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