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들어오던 해 여름, 우리 가족은 첫 차를 샀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종종 선생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차량 소유 여부를 조사하고는 했다. 그것이 의미 없어질 정도로 차가 많아진 지 삼 년 정도 흘렀을 때, 우리 가족도 르망을 닮은 초록색 차를 사게 되었다.
나름 단란한 가족은 초록색 새 식구와 함께 많은 일을 겪었다. 중학 시절 서부 여행때 지리산 언저리에서 젓갈 운송 차량의 투하물을 밟은 차에서는 씻어도 씻어도 그 해 여름 내내 젓갈 냄새가 났다. 그 여행 때의 아버지의 복통은 결국 암이었다. 새 차 때깔을 벗어 낼 때 즈음에 한국은 구제 금융을 받는 나라가 되었고, 월급 장이 아버지를 둔 우리 가족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살 때에는 적당히 타고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차는 그렇게 가족과 함께 나이를 먹게 되었다. 어머니만 가지고 있던 면허증을 온 가족이 갖게 될 때 까지도 여전히 차는 그대로였다. 레토릭으로서의 '잃어버린 10년' 이 무색하게, 몇몇 부분은 정말로 잃어버린 것 처럼 세상은 흘렀다.
올 해 부모님께서 차를 새로 사셨다. 16년이 된 차는 내 소유의 차가 되었다. 여름 내내 굉장히 즐거웠다. 차에 대해서 역사, 브랜드, 구동부, 설계 철학등 많은 것들을 공부했다. 우리 부부의 경주 첫 드라이브도 했고, 연구실 엠티도 함께 다녀왔다. 계속 타기 위해서 수리와 부품 교체에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 체스터님의 배려로 차를 중고로 구입하게 되었다. 4륜 구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동경이 무리한 선택을 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여러 사연 끝에 차가 두 대가 되었다. 없는 살림에 차 두 대를 가지고 있을 형편이 되지 않아 차를 팔았다.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한 차라, 기계에게 느끼기 힘든 어떤 느낌이 있었다.
우리 가족과 함께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도로를 즐겁게 달려 나가길. 안녕. 씨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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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포항에 오셔서 찍고 간 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