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unes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4/01/04 03:13 | inureyes
작년 2학기 중반 즈음에 애플사의 아이튠즈가 윈도우용으로 포팅되어 나왔다.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라 재미있겠군- 하고 덥석 깔아 버렸다. 정말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하드드라이브 안에 있는 mp3들을 몽땅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관리하는 기능이 있는데 정말 강력했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화를 하려면 관련된 필드들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 정보가 ID3 태그에 의해서 매겨지는데, 문제는 내 컴퓨터에 들어있는 mp3파일들에 모두 정확한 정보가 담긴 태그가 붙어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거였다. 그래도 그럭저럭 폴더 이름을 보며 천천히 붙여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consolidate... 라는 항목이 있어 뭘까 하고 눌러보았다. mp3파일들을 모두 아이튠즈가 알아서 관리하도록 두게 만드는 기능이었다. 심지어 파일들의 위치까지도 마음대로 조정하게 하는 옵션이었다. 그래서 폴더별로 모여있던 파일들은 아이튠즈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배열을 따라 폴더 단위에서 모두 재배열이 되었고, ID3 태그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았던 파일들은 모두다 한 폴더에 몽땅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한두곡이면 모르지만, 이제는 정말 무슨 곡이 무슨 곡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나하나 들어보며 태그를 붙이다가 문득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주욱 긁어버린 다음 삭제 키를 눌렀다. 셀 수 없이 많은 곡들, 좋아해서 열심히 모았던 노래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드라이브 안에서 나름대로 존재할 권리를 주장하던 파일들은 노아의 홍수를 만난것마냥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빈 칸엔 다시 다른 노래들이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내 의지만 작용한 것도 아니고 종현이의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노래들과 진이 노래들이 마구 뒤섞여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음악가들의 노래가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나도 들어줘 나도 들어줘하고 노래들이 고함을 지르지만, 갑자기 불어난 6기가의 노래들을 모두 들어주고 너 좋아 너는 별로 하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줄 만큼 시간이 없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들어보아야 겠다. 노아의 홍수가 쓸고 지나간 후에는 전과는 다르지만 더욱 넓은 세계가 펼쳐진다. 천천히 그 세계를 즐겨보아야지. 좋은 음악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 안에 묻어있는 사람을 읽을 수 있는 음악이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아이튠즈 덕분에 살아오며 어느새 안주해버린 음악적 취향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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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4 03:13 2004/01/04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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