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1/06/10 03:22 | inureyes
스피커. 지난 겨울부터 모데동방 재정비 하면서 한이 맺혔던 물건이다.

작년 겨울에 학교에 남게 된 이유의 반이 모데라토였고, 그런 방학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중의 하나가 모데라토였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 갔던 10월즈음, 모데라토 동방에는 의자 일곱개와 큰 책상하나, 앰프하나 시디피 하나 망가진 턴테이블 하나 그리고 트위터로 쓰던 걸로 보이는 작은 스피커 두개.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있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느낌과 함께.

방학때 남아서 동아리방을 이렇게 저렇게 의논해가며 모두들 함께 고생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추억. 있던 책상마저 들어내고 비오는 날에 바닥을 깔면서 그래도 즐거워했던 시간들과. 스티로폼판 위에 허잡한 오디오셋트 하나 달랑 올려놓은 빈방. 받아오자마자 사라졌던 세뱃돈. 하루가 멀다않고 들어갔던 fleamarket과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냉장고 나르기 삽질. 집에서 굴러다니던 키보드와 함께 밟은 버스터미널, 세번을 고쳐서 달게 되었던 버티컬. 아는것 없이 헤매던 모두 문닫은 가구거리.

그 시간들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었다. 스티로폼위에 올려놓은 오디오에서 나는 소리에 즐거워 할 수 있는 사람들.

끝까지 어떻게 하지 못했던 것은 스피커였다...... 130만원이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스피커. 눈을 낮춰보기에는 너무 슬프고 높이는 것은 정말 되지 않는 것이고. 동아리 지원비를 받는다고 해도 반액지원의 벽마저도 높았다.

오늘 원래 트위터를 트위터의 자리로 돌리고 메인에 1box 3 way스피커를 달았다. 그리고 뒤쪽에 겨울방학부터 찾던 예전의 인켈 스피터를 리플렉터로 놓았다. 대강 부하만 계산하고 리플렉터 스피커(로 쓰기엔 많이 고급이지만)엔 나중에 바리콘달기로 하고 바로 parallel로 연결해버렸다. 처음 튼 시디에서 해석해내는 소리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데라토에서의 수많은 추억. 이라고 말했지만 '그래 벌써 추억의 영역이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추억이 아니다. 모든것은 진행의 영역 안에 있다. 돌아볼 과거도, 멈출만한 여력도 없다. 음의 지시말에는 andante는 있어도 stop은 없다. 그리고 마디점프는 있어도 언제나 vivace에 있는 그런.

그래서 좋은거다. 상쾌한거다.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란건. 학교를 감싸는 십년된 신생학교라고는 믿기지 않는 단조로움과는 다른 것 때문에. 모데라토는 다른 동아리에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떤 동아리에도 없는 것은 가지고 있다.

무엇인지. 모데라토리안은 알고 있겠죠. 구체화는 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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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0 03:22 2001/06/10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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