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6/04/15 05:37 | inureyes
금요일 밤 재원과 재열과 갑석형과 함께 여우하품에 다녀오다.

스물 여섯 -그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의 나이는 어린 시절 그렇게도 싫어보이던 술을 왜 마시는지 알게 해 주었다. 술이 맛있다는 것은 술이 기분을 좋게 해 주어서도, 무엇인가를 잊게 해 주어서도, 또는 같이 마시는 사람들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건-그냥 맛있는 거였다. 마치 진하게 차를 우려 먹는 기분. 싸구려 티백 대신 어설프게나마 아웅다웅 살아온 나의 시간을 술잔에 넣고 향을 타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술이 맛있어 지는 것일까.

메뉴판에는 올해도 여전히 마구로가 있었고, 그 '생선'을 안주 삼아 포도주를 마시려고 했다. 재열이 육류를 먹지 않아 다른 것을 선택하기는 했으나 기숙사로 돌아온 지금도 마구로가 아른거린다. 참치. 동원참치.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 참치김치볶음밥. 여기서 그만 생각. 마지막 것은 떠올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生을 우려내어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람마다 술맛이 달라진다. 음주를 좋아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 꺼리는 사람.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같이 술을 마셔 보아야 한다는 옛 말이 있다. 원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그 말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손에 든 유리잔에서 어떠한 향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에 앉은 사람이 음료를 마시는 중인지, 관계를 마시는 중인지, 인생을 마시는 중인지는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20대의 축을 돌아 이제 늙어갈 피부에 대한 반대 급부일 것이다)

인생을 마실 줄 아는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 차잎이 되어버린다. 우려낼 인생이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박재삼도, 피에르 부르디외도 길상이도 잔 속으로 사라졌다. 에릭 클렙튼도, 혁이도, 올림픽 공원의 그 누군가도 안녕. 아는 사람들은 우습겠지만 이제 망각을 사모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간의 선물에 감사할 나이가 되었다.

수많은 기억들과 길었던 시간들과 기쁨슬픔즐거움아픔 모두 술잔에 넣고 들여다보니
바알간 포도주 물결따라 내가 하늘거렸다.
살아왔던 내가 있고 살아가는 내가 있고 살아 갈 내가 거기에 다 들어있더라.

이제는 다른 이유로 혼자서 술 마시는 것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다시 생선을 먹을 나이가 되면 다 컸을 거라던 어머니 말씀이 아른대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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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5:37 2006/04/15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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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잔에 담아.

    Tracked from Never grow up 2006/04/29 12:37

    요즘 술자리에 가면 한번씩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첫 잔을, 첫 모금을 즐겨보자. 남들보다 살아오며 많이 마신것도 아니고 일찍부터 술을 마신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보다 고등학교때 술을 더 마시고 대학교때 덜 마셨을지언정 그 양에 의한 차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무엇무엇을 할줄 아는 나이에 대해 무수히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니 나이때는 몰라" 이 말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내가 아는 것이 진리임을 강조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