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이야기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7/09/03 19:48 | inureyes

갑자기 PC방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 한다.

다른 대학교도 그렇듯이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도 수많은 PC방이 있었다. 처음 입학한 2000년에는 학교 안에서 대부분의 수요가 해결되기 때문에 PC방이 그다지 많지 많았다. 하지만 디아블로와 스타의 열풍이 불고 고등학생 중학생으로 그 연령폭이 마구마구 낮아지면서 학교 앞 시장에는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게 되었다.

언제였을까? 악마도 잡을만큼 잡았고 우주도 지킬만큼 지켰다고 생각될 때가 되니 그 많던 최신형의 PC방들은 갑자기 손님이 확 줄어들게 되었다. 새로 등장하는 게임들은 캐쥬얼 게임들이었고, 3D를 본격적으로 썼기 때문인지 발로 만들었기 때문인지는 주주들만이 알겠지만 갑자기 PC방 컴퓨터들에게 요구하는 사양이 마구 높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부분은 PC게임의 역사를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존 카멕과 리처드 게리엇이 주업으로 해 오던 일일 뿐이다. 그렇지만 PC방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마침 당시는 초기 투자 이후 2년에서 3년을 넘어가던 시기였고, 대부분의 PC방들은 과당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가격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기 때문에 PC 업그레이드나 환경 개선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이곳의 PC방은 줄도산했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유동 인구등이 있기 때문에 수요에 대한 대책을 어느정도 세울 수가 있지만, 포항의 한 마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시장에 나와 프린트 한 장을 하려고 해도 힘들어질 무렵에 PC방 하나가 새로 등장하였다. "포항에서 제일 빠른 PC방" 이라는 공격적인 문구를 전면에 내걸고, 깔끔한 환경에 당시로서는 최신식인 펜티엄 D 3.0기가 등등의 사양으로 시장 한복판에 지금까지 본 적 없던 규모의 PC방을 차린 것이었다. 이 경우 판단은 딱 두가지다. '망할까 아니면 안 망할까'

생각해보자. PC방 산업의 수요는 줄어들래야 줄어들 수가 없다. 유치원 아이들은 계속 초등학생이 되어가고 쥬니버에서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넘어 메이플스토리로 계속 업그레이드 된다. 어느새 동문회에서 술먹고 하는 일은 4대4 스타 한 판 또는 와우 던전 돌기나 카오스 5대5이다. 이 업주는 그걸 노렸다. 남들이 다 접는다는 말은 자신이 아무런 고생을 하지 않고서 해당 시장에서의 과점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이고, 게임 산업은 아무리봐도 망하는 산업은 아니었다. IMF 시절 국가 핵심 기업을 매각할 당시에 우리 나라가 알았어야 했던 그 교훈을 이 PC방의 주인은 알고 있었다.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아니, 다른 곳에 갈 곳이 있어야 가든지 하지... PC방은 문을 연지 6개월도 안되어 그 큰 크기에도 사전 전화 예약 없이는 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PC방이 시간 정해 놓는 것도 아니고 예약이 가능한 시스템인가. 하지만 그렇게라도 갈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이 곳을 제외한 다른 하나의 PC방은, 비싸고 안 좋았다. 택시를 잡아 타고 가까운 곳의 대이동으로 이동하면, PC방은 있지만 교통비 대비 장점이 특별히 없었다. (마일리지도 공유가 안된다는 점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한 PC방이 엄청나게 성공을 거두고 있으면 주위에 PC방 하나둘쯤은 새로 생기게 마련이다. 새로 생긴 PC방들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려고도 했고, 시설로 승부를 보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기존에 있던 그 PC방의 대응은 워낙 간단했다. 그냥 한결같았다. 가격을 내리지도 않았고, 시설을 더 좋게 업그레이드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가격이 오르지도 않았고, 설치된 시설이 낙후되지도 않게 꾸준히 관리 하였다. 사람이 넘치면 다른 PC방으로 안내해 줄 정도의 여유마저 보이다가, 결국 경쟁 PC방들도 그 PC방에 인수되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경쟁이 있었던 이후로도 그 PC방-포항에서 가장 빠른 멀티패스-은 그냥 한결같다. 가격이 오르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고, 시설이 낙후되지도 않는다. 달라진 점이라면 자릿수를 더 넓히고 화장실 공사를 새로 했다는 점, 처음 PC에 로그인하면 화재시 대피 통로가 안내된다는 점 정도이다. 그냥 PC방이 그랬어야 하는 모습이고, PC방에 보통 기대하는 그 모습대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무엇이 그 많던 PC방 업주들에게 시장 상황을 완전히 상반된 '위기' 또는'기회'로 나누어 받아들이게 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여러 전문가? 들이 전문적인 대답을 내놓겠지. 그렇지만 주윗 사람들의 많은 의견이나 생각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였다. 상황을 바르게 해석하는 자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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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3 19:48 2007/09/0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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