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4/11/30 01:12 | inureyes
통계역학 보강 수업이 있었다. 고전 모형에 대한 cluster expansion이 끝났다. 아직 정확하게 이해는 못하겠다. 개념은 알겠으나 전개가 무리이다.

안지수씨가 공익 휴가 맞아 포항에 왔다. 간만에 단체로 점심을 먹었다.

태권도 도장에서는 두 분께서 3단 승급심사를 패스해서 운동 후에 맥주를 마시러 다녀왔다. 5년동안 다녔던 효자시장인데, 매일 걷던 그 골목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해본 맥주집이 있었다. 그 분들이 시장에서 좋다고 말씀하시는 가게들은 전부 이름도 못 들어본 가게들이었다. 동네사람과 외지 사람의 차이일까. 왜인지 내가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cluster expansion 수업을 들으며, 그 전개과정에서 수업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한계를 확장하기 위하여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도구가 인간의 새로운 한계를 결정짓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리학의 도구들은 전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모사하기 위한 모형이다. 이 이야기는 길어지니 생략.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써 보아야겠다. 이것저것 미루는 것들이 늘어난다. 결론만 말하자면 cluster expansion이 지금처럼 물리학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도구를 뛰어넘기 위한 생각이 필요했다는 것 정도이다.

간만에 포항에 온 녀석의 이야기는 여전했다. 졸지에 백수가 된 민수준엽들은 서울에서 구르고 있었으며, 지수는 한영외고에서의 생활을 즐기는지 어쩐지 잘 보내고 있었다. 사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환경들이 변하였다. 종헌, 민수, 준엽 이 세 녀석이 제일 확실하게 그걸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다들 잘 되어야 할텐데 약간 걱정이다. 이번 주말에 서울에 가서 쪄니와 함께 대학원턱을 내야 하는데, 다음주가 발표라 역시 연기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지역적 차이는 의외의 곳에서 많이 묻어나온다. '잰다'는 표현의 강한 발음인 '짼다' 는 여기서는 주로 "못하겠다. 배를 째라"의 표현으로 쓰이지만 서울에선 "옷 좋다고 째는거냐?" 의 경우로 많이 사용한다. 그런 것들이야 말의 차이지만 의외의 곳에서 생각의 차이들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태권도 하시는 어머니들(또는 누님들)과 맥주를 마시며 세대의 차이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지 못한 세대를 그 분들은 살아왔고, 그래서 내가 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사이의 시간간격을 뛰어넘어 모두 함께 맥주를 들이키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살아온 시간은 다르지만, 살아가고 있는 시간대는 동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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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30 01:12 2004/11/3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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