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4/11/20 00:54 | inureyes
축제기간이다. 음악동아리들이 저마다 공연을 하였다. 뮤지컬 음악을 테마로 한 합동공연 팀의 공연이 있었다. 또한 락음악을 연주하는 동아리들의 공연도 있었다.

이상한 점이지만 연주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묘하게 느끼지 못하는 점이 있다. 우리말로 된 곡은 거의 없다. 영어나 다른 국가의 언어로 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것이다. 국제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무슨 어이없는 태클이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점은 사회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언중이 자신의 언어로 되지 않은 '예술'을 즐긴다.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곡이야 꼭 가사가 아니라고 가락이나 리듬이나 분위기로 음악을 듣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정상적이지 않다. 곡이 가사가 있는 이유는 가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가사의 내용에 곡이 따라 가게 되고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곡을 먼저 작곡하고 가사를 붙일 경우라도 곡의 분위기에 맞는 가사를 붙이게 된다. 장송곡 풍의 노래를 틀어놓고 내용은 발랄한 연애가사를 붙이는 일은 없다.

이러한 현상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프랑스와 같이 문화의 언어를 자국어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기존의 대중문화를 버린 후 영어권에서 생산된 문화를 소비하며 그들의 대중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음악에 관한 전파 과정에서 언어의 벽은 그 내용보다는 단지 그 분위기를 바탕으로 전파되었다. 그런 경우 과연 그 음악은 원래 작곡한 사람의 예술을 온전히 담고 전달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사를 해석하여 내용을 안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받아들인 음악은 원어민이 받아들인 음악과 같은가?

다른 예를 보자. 한국인이나 일본인, 중국인은 원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에 익숙하다. 어느 연령이 지나게 되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영어권의 국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막은 청각장애인을 위하여 준비되는 서비스이며, 비영어권 영화를 수입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음성부분을 재녹음한다. 극히 일부의 경우 영어자막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언중은 이에 익숙하지 않다.

자막을 보는 일은 무의식중에 텍스트에 열중하게 되는 작업이다. 화면을 보는 일에 신경을 기울이기 힘들다. 언어와 영상이 동시에 시각적 작용을 통하여 들어온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들에서는 그렇지 않다. 화면을 볼 경우 화면 정보는 눈을 통하여, 언어 정보는 귀를 통하여 들어온다. 이는 아주 정상적인 작용이다. 당연히 그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차이가 존재한다.

'Ballad dance'는 국문학에서 원시제례음악을 뜻한다. 원시제례음악에는 뜻있는 음성정보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후 언어의 발달을 통하여 선사시대 후기를 전후하여 음악으로 발달하였다고 연구되어 있다. 이 과정은 인간이 예술을 즐기는 과정에서 일종의 상전이를 일으켰다. 이전의 예술이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였다면 이후의 예술은 감정뿐만 아니라 '인간이라 가지는 이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타언어의 음악을 즐기는 언중은 그 한계때문에 원래의 음악을 모두 즐기지 못하고 ballad dance의 차원에 반영되는 음악만을 즐기게 된다.

흔히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음악에는 국경이 있다. 언중에 의하여 결정되어 절대 넘을 수 없는 종류의 국경이 존재한다. 외국어로만 이루어진 수많은 동아리 공연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저들이 생각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였다. 아직까지도 종현이의 "음악은 언어가 닿을 수 없는 끝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날고 있는 음악은 언어로 구획지어진 땅에는 내려올 수 없다" 는 것이 아닐까?

뜬금없지만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이 생각난다. 다리가 없는 새.
분명히 예술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하는 것이 있다. 반면 그렇게도 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한없이 아쉬울 뿐이다.

아마도 그 아쉬움이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영어를 좋아하는 이유와 잘하고 싶은 이유일것이다.
세상에는 놓치기 싫은 것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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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0 00:54 2004/11/2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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