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피부병 때문에 효자 시장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에서 나온 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책을 한 권 들고 시장에 갔었다.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는 것은 한두해 하는 일이 아니라 문제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드링킹 요구르트 사백밀리리터 짜리를 하나 사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손은 두개다.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손에 요구르트를 들고 마시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해 보면 문제가 있다. 책장을 넘기려면 손이 두 개가 필요하다.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려니 느릿느릿. 책장 넘기느라 요구르트도 느릿느릿. 책 보는 것도 특기이고, 요구르트 마시는 것도 특기이지만 둘 다 동시에 하려니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요구르트만 편하게 마셔서 배부르게 가을 오후를 즐기든지 요구르트를 버려버리고 마음의 양식을 찾든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둘 다 버릴 수 없으면 어떻게 할까? 예전엔 무식하게 손가락을 꼬아가며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한 손으로는 요구르트를 홀짝홀짝 마셨을 것이다. 복수전공을 할 때의 자신이 그랬었다.
기술은 발전한다. 이런 상황에 어느정도 능숙해졌다. 드링크 요구르트 팩에 빨대를 꽃는다. 책 대신 PDA를 들고 e-book을 읽는다. 이러면 그냥 각자 하나 같이 하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번같이 PDA가 아니라 실제 책인 경우에는 빨대 꽃은 요구르트를 물고 왼손으로 잡는다. 페이지는 세 손가락으로 넘긴다.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이렇게 해도 별 무리는 없다.
T자형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한 분야를 끝까지 파는 ㅣ자형 인간이나 여러분야를 대충 아는 경우가 ㅡ자형 인간이라고들 한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모든 것들 사이의 연관성은 갈 수록 중요해진다. 온갖 길을 걸어 본 학자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T자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지난 여름인가 들었었다. (같은 날 어떤 사람은 I 자 형이나 II자형 인간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무언가 알고 싶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잘 써먹을 수 있는' 인간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들은 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ㅣ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살다보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럴때마다 외발 자전거를 타고 사과 세 개로 저글링을 하며 입으로 하모니카를 불 필요는 없다. 기술이 사람을 도와서 한계를 올려준다. 하지만 한계가 늘어났다고 하는 일의 수를 늘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겹치는 것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의 개성' 으로서의 지향점을 끝없이 날카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내가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인 요구르트를 마시며 책을 보며 시장을 한바퀴 도는 산책을 하며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