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집.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제1회 복잡계 컨퍼런스를 다녀왔다. SERI1에서 3년 정도 이어졌던 복잡계 경제학 워크샵이 올해부터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 되고, 이제는 SERI의 도움을 좀 덜 받으며 독립적인 조직이 되려고 한다. 그 단계의 시작으로 개최된 컨퍼런스였다. 지난 복잡계 모임에 참석한 경험2이 있어 큰 관심은 없었는데 서울에 온 김에 참석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컨퍼런스는 무난했다. 들을 만한 발표도 몇 있었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총평을 내려보자면, 물리학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괴로웠다.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복잡계는 메타포가 아니다."
이후의 내용을 적기 전에 하나. '굉장히 까칠한 내용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할 것.'3
모 발표를 끝까지 참고 들은 후에 질문을 하나 했다. "그 내용에서 복잡계가 어디 나오나요?" 돌아오는 대답이 "사람이 많아서 복잡합니다." 그 뒤에 자기가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장광설이 이어졌다. 속으로 '그 쯤 멈춰주시라' 고 외치고 싶었으나 어쩌겠는가. 나만 속 터진건 아니었는지 갑진형도 비슷한 질문을 했지만 역시 베를린 장벽도 아니고 휴전선급의 그 벽은 어쩔 수 없었다.
전체 발표의 반 조금 못되는 내용은 전부 복잡계를 그들만의 '메타포'로 이해하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단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프 이론으로 노드와 링크 몇 개 이어놓고 그림을 그리면 복잡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뭐, 복잡계 '방법론' 을 사용하려고 했다고 하면 이해해 줄 수는 있다) 솔직하게 말 해 보자. 노드 수 50개가 안되는 네트워크에서 무슨 수치를 그렇게 많이 구해 놓고 그게 복잡계라고 말할 용기가 나는 것일까? '복잡계 네트워크 방법론' 을 적용 시킨다고 그 계가 복잡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술 더 뜨는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서 "창발현상" 을 읽어 내는 사람들. 모처럼 노력해서 열린 컨퍼런스가 이런 내용이 반이라니 내심 국가 경제가 어디서 물이 새서 점점 안타까워 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슬펐다. 심지어 그렇게 이론을 전개해 나가길래 시그마 기호4 아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는 사회학자 분도 계셨다.
'통섭' 이라는 말이 있다. 전혀 다른 분야 사이의 소통을 시도한 컨퍼런스였다면, 가능성 만큼 큰 좌절을 보고 왔다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해야 겠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대화를 위해서는 대화에 쓰이는 단어들의 공통된 '정의' 가 합의되어야 한다. 우선 그것부터 시작해야 할 듯 하다는 것이 현재의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