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전자기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주:이럴때는 가끔 무섭다. 2004년에 계산하고 썼던 내부 페이퍼에서, 기후 변화가 한 번 일어나면 그 후 빙하기가 안정되는데는 300여년이 걸릴거라고 예측했었다. -이런 페이퍼는 써 놓았지만 증명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인위적인 조건들을 무시하고 자연 상태에서 상전이가 일어날 경우의 계산을 했으니 인류가 60억이 넘어가는 지금의 속도는 과연 어떠할까...)
우리 연구실에서 태어나 포항공대 학생들의 잡담 공간을 채워주었던 포스비가 이제 곧 사라진다. 텔넷에서 웹 기반으로, 레거시를 완전히 포기하고 이동하게 된다. 이름도 '네오 포스비' 란다. 얼마나 '네오' 할지는 모르겠다(주:재선형한테도 고필이 보드에서 이야기 했었지만 2006년에 euc-kr이 웬 말이냐...).
집에 LP판들이 꽤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LP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이다.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들은 가끔 아날로그 기기가 주는 향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CD대신 LP, 트랜지스터 대신 진공관. 그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우습지만, 디지털임이 분명한 사이버 공간에서도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고는 한다. 파란 화면에 흰 글씨로 나오는 예전 나우누리의 텔넷 창이라거나, 문을 닫기 전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포스비의 검정 창을 보고 있으려면 웹에 없는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세대의, 비슷한 때에 컴퓨터를 만난 사람들은 텔넷에서 아날로그의 무엇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문득 관용적인 '아날로그'라는 표현이 사람들이 익숙하지만 사라져가는 그 무엇에 붙이는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CD와 LP를 구별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LP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고 웹에서도 단축키가 다 먹지만 그럼에도 텔넷 B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사라져 가지만 그 안에 담긴 추억들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것처럼.
사람이 있는 공간, 기억이 있는 공간.
디지털처럼 0과 1로 단속적이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든 얽혀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디지털 도구 위에도 '아날로그'를 얹어가며 사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