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어내기/살아가기 | 2004/12/08 23:47 | inureyes
어제 태권도하시는 어머니분 댁 집들이에 갔었다. 지곡동 안쪽에 스틸하우스라는 주택단지가 있는데, 그 곳에 집을 지어 이사를 하셨더라.
우르르르 가보니 집에는 젊은 시절부터 취미로 하셨더라는 수석이 집안에 가득했다. 2층집이었는데 층을 가릴것 없이 돌이 가득했다. 부엌 옆에는 난을 키우는 곳이 있었는데 2층으로 만들어진 난 선반에 자라는 난들이 줄잡아 백포기가 넘어보였다. 젊은 시절에 처음 결혼했을 때는 누가 주워갈까 새벽에, 근데 돌은 무거우니 오토바이를 타고 머나먼 해변가에 가서 밤새 파도에 밀려 올라온 돌을 주우셨단다. 취미활동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분들이었다. 기억나는 명언이라면 "취미는 오래 제대로 할려면 돈 산거(싼거) 해야돼." ...백번 동감.
학교에 입학해서 포항에서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었다. 음식점에서 백 끼니를 사먹어도 집에서 직접 하는 밥과는 맛이 다르다. 밥을 후딱하니 두 공기 먹었지만 아마 세 공기도 먹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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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기숙사자치회 홈커밍데이에 다녀왔다. 논문 관련해서 교수님을 뵙고 오느라 (약간 긴장했었는지) 힘이 쭈욱 빠져서, 어느정도 주워 먹다가 대충 방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먹을것 없다고 지난주 내내 괴성을 질렀더니, 하늘이 도우셨는지 이번주는 먹을 복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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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 집뜰이에 참석한 어머니들의 얼굴을 보고 어머니들의 성격을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들의 얼굴을 보고 성격을 짐작하기는 의외로 힘들지만 어머니들의 얼굴을 보고 어떤분이실것 같다고 짐작하기는 그보다는 훨씬 쉽다.

아이들을 키우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쉽게 대하기 위해서 어머니들의 표정이 좀더 직접적으로 변한다. 직장상사가 뭐라고 하든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아버지들에 비하여, 말못하는 아기들과 이야기하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어머니들은 훨씬 표정이 간단하다. 그래서 어머니들 중에서 직장다니시는 어머니는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뜬구름잡는 이야기같이 보일지도.

집뜰이 마지막 즈음에 맥주로 건배를 하였다. 어느분께서 "뭐라고 하까?" 하시는 물음에 어느 어머니의 제안으로 "부자되세요" 라고 건배를 하였다. 집뜰이와서 행복하세요-도 아니고 부자되세요-가 뭐냐? 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동시에 어느새 대부분의 어른들의 행복은 '얼마나 부자인가' 와 동일한 말이 되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였다. 나부터도 집을 처음 보고서는 가장 먼저 집값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사람 여럿 망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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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단체장은 일단 좀 강하고 봐야한다는 지론이 있다. 어차피 관료집단의 서류무장 방패를 이론으로 뚫는건 힘들다. 홈커밍데이에 참석하면서 언뜻 든 생각은 '저 녀석 연임할 줄 알았으면 처음에 좀 뱃심좋고 강한 녀석을 데리고 오는건데' 였다. 없어도 있는척, 계산은 속으로 해야지, 저런 식으로는 딱 이용당하기 좋다. 열정은 있으나 기술이 2% 부족하다. 재윤이는 화륜양 없으면 몇% 모자란지 잘 계산이 안되는군. 벡터가 잘 변하는 만큼이나 브레이크가 없으니, 재윤이 옆에 차화륜씨가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홈커밍데이였으나 다들 현역이라 정말 홈커밍데이로 생각하고 나간 사람은 나뿐인듯 하더라. 내년에 가면 정말 홈커밍데이마냥 기분낼텐데, 어딜가도 논문생각이 머리 가득이라 오늘은 일단 넘어갔다. 이번 학기 정리 다 끝나면 시험 후에 한 번 통집에 모아놓든지 시장에 모아놓고 술에 절여버려야겠다. 그러고보니 대희 이놈은 휴가 안나오나.

그 전에 성재형 결혼 축하 기념으로 정웅이형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여 한 번 축하해 드려야 할텐데 날짜잡기가 당장은 쉽지 않다. 먹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렇게 먹는 이야기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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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23:47 2004/12/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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