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6/11/21 00:45 | inureyes

월요일 새벽에 은진과 산책을 했다. 가끔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가 있다. 머릿속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생각은 아무리 마인드맵을 그리거나 해도 쉽게 펼쳐지지 않는다. 끝에 가서 알게 된 것은, 요새 안정감 없고 사람이 좀 날카로워진 이유가 할아버지에 이어 곧 외할아버지도 잃을지 모르는 지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영정 사진 안의 거대한 갓을 쓴 모습 만큼이나 먼 존재이셨다. 아버지는 막내이셨고, 따라서 할아버지의 인상은 처음부터 굉장히 나이가 드신 모습이셨다. 외할아버지는 달랐다. 어머니가 장녀이셨다. 어린 시절에 부산에 가면 외할아버지께서 출근하시는 모습도 보며 자랐다. 대학생이던 외삼촌들이 학교에 갈 때면 외할아버지는 날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는 했었다. 유엔묘지에도 가보고, 부산 박물관에도 가보고, 바닷가에도 가보았다. 메칸더브이 설계도가 그려진 메칸더 대백과도 사주셨고, "영구 소림사에 가다"를 보러 함께 태어나서 두번째로 극장에도 다녀 왔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기억이 떠오르는게 두렵다. 언제나 그렇듯 쿨하게 보내드려야 하겠지만 막상 그 날이 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굉장히 가슴이 답답한 새벽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할 말은 적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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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1 00:45 2006/11/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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