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과학 선생과 엄청나게 싸운 이후로 설득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득은 필요하나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어릴 때 알게 되었다. '과학적 사실' 에 관하여 상대를 설득하기도 힘든데, 하물며 개인의 의견을 설득하기는 얼마나 힘든 일일 것인가.
그 선생은 자신의 권위를 과신하였다. 생판 꼬마 초등학생이 자신의 생각에 반박을 해 나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학생들 오십여명 앞에서 공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학문하는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
모든 사람이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학문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만도 이상론이다.
패러다임 전환과 논쟁의 역사의 저변에는 철저한 독선이 깔려있다. 설득은 그러한 인간의 본질 위에서 적어도 나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과정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의견 설득을 다시 시작해야 할 듯 하다. 침묵 또한 금이 아니다. 살아오며 토론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설득은 토론에서 자신의 논지가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서 만들어진다. 그에대한 부분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논지는 그를 통해 실행하고자 하는 복선을 깔고 진행해 왔으며, 토론은 설득이 아닌 납득을 낳았다. 그를 통하여 목적들은 달성하였으나 다른 것들은 그 과정의 수단일 뿐이었다. 학문하는 사람이 되기로 하였는데 이러면 안되지.
대학 2학년 때, 이해는 하지 못해도 인정은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이제 그에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초등학교 그 당시부터 14년이 지나서야 설득에 대한 불신의 phobia를 이겨내볼까 마음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