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써내려간 일기부터, 디스켓에 저장한 일기와 글들, 홈페이지를 통한 기록들, 이제는 웹로그를 통하여 남기고 있는 기록들이 있다. 읽어서 판독할 수 있는 기록은 여섯살 이후부터 가지고 있다. 글쓰기 싫어했을 꼬마를 어머니는 어떻게 설득하였을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덕분에 걸어온 길을 '당시의 나'의 눈을 통하여 볼 수 있다.
개인이 끊임없이 기록을 남기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이다. 기록을 지움으로 인하여 자신에게로의 되짚음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생의 족적은 글을 지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글을 지우는 행위는 지금의 자신이 판단하였을 때 과거의 자신이 부정하고 싶은 면을 가지고 있거나 그 족적들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함의 반증이다.
아무리 쓰레기같은 글이거나 감정이 폭발하여 적은 글이거나, 아무생각없이 주절거린 글이거나, 유치찬란함이 극을 달리는 글이거나, 설익고 치기어린 글이거나,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들의 글이거나, 고뇌에서 나와 인정하기 싫은 글이거나 상관할 것 없이 그 기록들은 '자신을 위하여' 보존될 가치를 지닌다. 그러한 기록들은 개인이 독선으로 빠지지 않게 도와줄 방어막이 되기 때문이다.
삶은 흐름이다. 작용점과 방향성이 있는 벡터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기 위해서는 기억이 아닌 기록이 필요하다. 기억은 자신을 위해 가공되지만, 기록은 작용점이 되어 당시의 자신을 성찰하도록, 지금의 자신을 반성하도록 돕는다.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은 최근의 짧은 기록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에 더하여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기록의 축적이 필요하다.
기록의 중요성이 낮아지면서, 또는 기록이 자신을 치장하는 수단이 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생각해서는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이 필요하다. '자신에로의 객관화' 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수단인 그러한 기록들을, 사람들은 더이상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
기록이란 것은, 일곱살의 자신이 일기장 윗쪽에 '가가가가'라고 삐뚤빼뚤하게 낙서해 놓은 정도로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