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대학교에 또 새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어떻게든 가만히 있어보려고 하지만, 역시 기분은 이상합니다. 그렇지만 꽤 편안하기도 합니다. 전에 누르고 있었던 무언가들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인솔자의 부담도, 방학의 삶이 가져다 주던 피곤함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막상 학교에 내려와서 앓아 누웠습니다. 언제나 내려올 때 즈음이면 의례적으로 아픈 것과는 달라서, 열이 나서 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열에 들뜬다고 하지요. 그런 상태로 하루를 보냈지요. 잠을 잘 수도 없지만 잠을 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태로 그냥 그렇게 있었습니다. 싸도가 와서 꽤나 챙겨주고 놀아주는 바람에 헐렁헐렁하게 그냥 좀 괜찮아지긴 했지만요.
열에 들뜨면 환상도 보이고 환청도 들리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니게 그저 누워서 앓기만 할 때는 그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네요. 꿈이지만 없는 일들은 아닌, 그냥 보통 때에는 끄집어 내기 힘든 자잘한 일들이 보였습니다. 아픈 도중에도 신기했지요. 즐거웠습니다.(아프면서 즐겁다는 건 참 표현하기 힘듭니다. 미친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니까요) 정말 잊어버릴 뻔한 시간들이 생각이 났거든요.
생각해보면, 참 일들도 많았던 시간이고 여러가지로 신경도 많이 쓰였던 시간이지만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열에 들뜨기 전까지 해를 세 번을 넘기도록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이 더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하늘이 푸르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늘이 항상 푸르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늘이 푸르른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푸른 하늘을 보고 감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보고 울 줄도 알고 구름이 끼어 어두침침한 날은 먹장구름 속을 바라보며 시커멓게 웃을 줄도 압니다. 쉬운 일 같지만 사실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자신을 맞추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동화되기 위해선 자신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또 그 안에서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 푸른 하늘이 아닌 다른 하늘까지 함께 사랑해준 몇몇 사람들,
아침이면 작년과 똑같을 얼굴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마치 예전의 거울을 보듯이. 네, 그리고 아마 또 계속 생각해오던 모든 것들 -주로 배쨈과 땡땡이에 관한- 을 다 잊어버리고 뛰겠지요. 하지만 이젠 그 사이들 가운데에서 그냥 있음으로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정도로 자랐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방학이 무엇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무책임'이, 실제로 책임이라고 생각하던 것들 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에 의미가 없는지 편안함으로 알려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것.
네, 일단은 그것만으로 충분한거죠.
조금 더 나답게 사는것.
끊임없는 정제에서 우러나는 순수로
나를 자유케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