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3/06/08 03:27 | inureyes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글에 '텍스트'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 전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알 수 없을 양의 텍스트들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지식은 지성이 아니기 때문에 텍스트의 무게에 따라 독자는 눌린다. 때때로 다양한 환경들은 독자가 눌리지 않기 위해 쏟을 노력의 가능성마저도 눌러버리게 된다.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 두려웠다. 오랫동안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던 자신이 아니라 사고의 깊이가 다른 사고에 짓눌리지 않을 정도이기를 바랬다. 정체성을 세우고 싶었다.

벌써 천 일 가까이가 지난 지금, 그 기간동안 텍스트에서 자유로운 인간이었나 텍스트에서 자유로운 인간인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이었나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적극성에서 나오는 무모함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 호기심만으로 내가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의미를 알아나가는 끝없는 텍스트들이 나를 만들었음을 부정하기가 힘들다. 정말 줄여 말하면, 나의 삶은 텍스트와 현실의 중간에서 그 사이의 끊임없는 대입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현실을 해석하는 자신의 사전으로 온전히 자신의 창조물만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한계라고 생각했다. 지난주 며칠 괴로웠다. 그렇지만 한계라고 생각한 것은 모자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 존재로 교육을 받아온 모든 도전자들에게 있는 일이었다. 나의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부터가 자신의 창조물이 아닌데, 어떻게 완전히 텍스트에서 벗어나서 '사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지 무모했다. 이젠 쓴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준 변화는 크다. 극단적인 사고속에 갇혀 치열하게 토의하면서 텍스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텍스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들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텍스트 뒤에 있는 지성과 저자 자체를 읽어내게 되었다. 어쩌면 좋은 일일수도, 어쩌면 나쁜 일일수도 있다. 더이상 텍스트 자체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게 보면 소소한 감동을 주는 모든 텍스트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텍스트가 구성하는 자신을 받아들인 지금은 조금 더 다양하게 생각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족쇄를 풀어놓은 느낌이다. 고등학교 시절 머릿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가지고 싸우고 있던 많은 지성들과 지식들이 이제는 대결상대만이 아니다. 역시 이러한 변화는 설명하기가 힘든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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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08 03:27 2003/06/08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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