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4학년의 첫 시험주간을 끝냈다. 4학년답지 않게 힘든 한 주였다. 이 나이가 되면 졸업 준비를 하면서 편안한 여생을 즐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줄로 늘어서서 들어주기를 기다리는 과목들을 round robin으로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 적당히 시험을 끝내고 나니 기숙사자치회의 압박이 몰려온다. 배병규씨에게 책도 부쳐줘야 하고, 다니에루 제대한거 놀아줘야 하고.
사람이 그렇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치단체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총학이야 언제나 후보 안나오고, 동아리 연합회도 자체인물조달에 어려움 겪는다. 작년에 부회장 컨택을 50명 넘게 들어갔다가 실패한 모 단체-_-도 있다. 이래저래 굴러가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삼천명으로 구성된 조직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외부와 어느정도 분리되어 있는 점과, 학교뿐만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점등은 포항공대가 하나의 사회모델로 기능하게 한다. 인상이와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크기의 제약은 관찰을 쉽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모델로서의 기능성을 떨어뜨린다. 한 사람이 공유하는 담론의 수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담론의 크기는 심각하게 한정된다. 그 안에서의 개인의 에피스테메가 한정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회로서의 기능을 모두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종의 사회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사회적 필요에 의한 장치들이 모두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요구에 대한 공급의 형태로 자치단체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들을 필요로하는 비율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요구되는 비율에 비하여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언제나 적임자를 찾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구조적으로 포항공대의 자치단체들은 언제나 사람가뭄속에서 살게 되어있다. 구성원수가 적다는 것이 한 사람의 precentage를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요구되는 구성원에 소수 존재하더라도 기능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잘 굴러가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회에서, 사회적인 요구의 크기에 대한 공급은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가. 3000명의 인원의 조직이 가지는 복잡도를 들여다보면 굉장하다. 어떠한 명령이 없이 이러한 조직들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학교의 경우에는 복잡도의 최상위계층이 존재하고, 조직에 관한 판단은 그쪽에서 처리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회는? 인원수가 두 배 증가할수록 복잡도는 네 배가 증가한다. 일정수준 이상의 복잡도는 중복되어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구조가 무너지지 않고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복잡계complex는 자기수복성self-construct을 가진다. 물리이론이면서 사회이론에도 적용된다. 복잡도가 증가할수록 다른 부분의 변화는 쉽게 수복된다.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 학교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 자체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이 있겠지만, 복잡도를 증가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수로 증가시킬 수 있을까.
지금처럼 힘이 있을 때 한 번 실험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언제나 궁금하면 한 번 해봐야 끝나니까.)